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82] '평범한 사람들의 벽지', 사치품이 되다

바람아님 2013. 10. 21. 09:28

(출처-조선일보 2012.10.23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윌리엄 모리스 '데이지 무늬 벽지'… 1862년, 

종이에 인쇄, 런던 빅토리아 앤드 앨버트 미술관 소장.

영국의 공예가이자 사회주의 운동가, 시인이며 출판인이었던 윌리엄 모리스(William Morris·1834~1896)가 디자인하고 자기가 세운 회사에서 인쇄한 벽지다. 꽃 중에서도 수수한 데이지를 단순하게 도안한 이 벽지는 화려한 장식품보다는 평범한 사람들을 위한 소박하고 실용적인 '영국적' 공예를 추구했던 모리스의 성격을 잘 보여준다.

모리스가 활동하던 19세기 중반의 영국에서는 이미 한 세기 전에 시작된 산업혁명을 발판으로 공장에서 생산된 소비재가 대량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이처럼 기계가 준 물질의 풍요 속에서 예술가의 독창성은 사라졌으며, 단지 진부한 기존 스타일을 마구잡이로 뒤섞어 현란하기만 한 천박한 취향을 양산했다고 한탄했다. 기계화시대에 영혼을 잃어버린 공예를 되살리기 위해 그는 중세의 장인(匠人)들로부터 영감을 구했다. 그토록 위대한 고딕 대성당을 세운 것은 오직 믿음과 열정으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노동했던 평범한 장인들의 '손'이었다는 것이다. 따라서 벽지를 비롯한 가구·직물 등 인테리어 용품 일체를 취급하던 그의 회사에서는 기계 대신 수작업으로 제품을 생산했다. 그러나 그 결과, 모리스 회사의 제품들은 평범한 사람들은 꿈도 꿀 수 없는 비싼 사치품이 되고 말았다.

소수를 위한 예술을 거부하고 누구나 아름다운 물건을 쓸 수 있는 이상 사회를 꿈꾸며 '미술과 공예 운동'을 일으켰던 모리스는 이후 사회주의에 투신했고, 1884년에 '사회주의동맹'을 결성했다. 이런 그를 두고 엥겔스는 '지식인 중 가장 정직하지만 조직에는 가장 서툰 이'라고 우려하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곧 사회주의동맹에서 축출당했다. 남은 것은 그가 만든 온갖 아름다운 것이었다.



(또 다른 벽지 무늬 - morris_wallpaper with a daisy patter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