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83] 사랑에 빠진 이 여인, 곧 닥칠 운명도 모른 채…

바람아님 2013. 10. 24. 20:57

(출처-조선일보 2012.10.30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레오나르도 다빈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1489~1490년, 목판에 유채, 54×39㎝, 폴란드 크라쿠프 차르토리스키 미술관 소장.
레오나르도 다빈치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  
        1489~1490년, 목판에 유채, 54×39㎝, 
   폴란드 크라쿠프 차르토리스키 미술관 소장.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그림인 '모나리자'를 그렸지만, 그의 본업은 사실 화가가 아니었다. 예술과 공학, 인문학과 자연과학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세상 만물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차 있던 그는 그림 이외에도 할 일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는 젊은 시절의 대부분을 당시 밀라노를 다스리던 루도비코 스포르차 공작 아래서 군사 기술자로 일했다. '담비를 안고 있는 여인(Lady with an Ermine)'루도비코의 주문으로 그린 체칠리아 갈레라니의 초상화다. 체칠리아는 평범한 집안 출신이었지만 라틴어에 능통하고 음악과 문학에도 뛰어난 재능을 갖추었고, 루도비코는 그런 그녀를 무척 사랑했다.


섬세한 입술과 선이 고운 얼굴을 가진 그녀는 화면의 왼쪽을 향해 앉아 있다가, 오른쪽으로 얼굴을 돌리며 그림 밖에 존재하는 누군가를 바라보고 은은한 미소를 짓고 있다. 레오나르도는 화면 오른쪽에 조명을 두고 그녀의 얼굴을 비춘 후, 목을 따라 어깨를 향해 흐르는 부드러운 갈색 그림자를 만들었다. 이처럼 미묘한 명암의 변화를 통해 천천히 고개를 돌리는 그녀의 우아한 움직임이 느껴진다. 그녀의 동공 속에서 밝은 빛이 피어오른다. 사랑에 빠진, 그리고 사랑을 받는 사람의 눈빛이다. 그림 밖에서 그녀를 부른 건 물론 루도비코였을 것이다.

체칠리아가 안고 있는 흰 담비는 바로 루도비코의 문장(紋章)이자, 임신의 상징이었다. 실제로 그녀는 1491년, 그의 아들을 낳았다. 그러나 같은 해에 루도비코는 경쟁국 페라라의 유력한 귀족인 데스테 집안의 딸과 결혼했다. 그들의 성대한 결혼식을 기획했던 것도 레오나르도다. 품에서 담비를 빼앗긴 체칠리아의 모습을 상상하면 측은하기 짝이 없다.


Leonardo Da Vinci-Lady with an ermine-(부분 확대 이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