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14] '몬주익 언덕'에서 꿈꾼 自由

바람아님 2013. 10. 25. 19:45

(조선일보 2013.10.25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1992년의 바르셀로나 올림픽을 기억한다면, 황영조 선수의 마라톤 레이스도 잊지 못할 것이다. 그가 경쟁자들을 따돌리며 끈기 있게 오르던 가파른 언덕, 바로 그 몬주익 언덕 위에 화가 호안 미로(Joan Miro·1893~1983)의 미술관과 묘지가 있다. 사시사철 온화한 대기와 눈이 시리게 푸른 하늘이 있는 곳, 여행객을 들뜨게 하는 축복받은 기후의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그 주도(州都)인 바르셀로나가 바로 미로의 고향이다.


	호안 미로, 카탈루냐 풍경 작품 사진
호안 미로, 카탈루냐 풍경, 1923~24년, 캔버스에 유채, 65×100㎝,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
그의 '카탈루냐 풍경'에서는 구불거리는 검은 선과 따뜻한 원색의 자유분방한 형태가 어우러져 마치 천진한 어린애의 낙서처럼 보는 이의 마음을 경쾌하게 띄워 준다. 초현실주의자들과 가까웠던 미로는 상상의 세계를 추구하고 예술을 통해 무의식적인 꿈과 환상의 영역을 구현하고자 했다. 그는 특히 관습의 속박을 받지 않는 자유로운 이미지를 자신의 무의식으로부터 추출해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자동기술법, 즉 오토마티즘(automatism)을 실험했다. 따라서 그는 무언가를 그리기 위해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아무런 의도 없이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도중에 형태가 스스로 드러난다고 했다.

사실 생기발랄한 미로의 작품은 고향으로부터 추방당한 자의 상실감과 정치적 압제에 대한 저항 정신을 담고 있는 어두운 시대의 산물이다. 20세기 초, 카탈루냐는 프랑코 정권에 끝까지 저항하다, 바르셀로나가 함락되면서 스페인으로부터 힘들게 되찾은 자치권을 다시 한 번 잃어버렸던 것이다. 지난 9월, 카탈루냐 주민들은 스페인으로부터 분리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화폭 안에서나 밖에서나 늘 자유를 추구했던 미로가 살아있었다면 어떤 그림이 나왔을지 궁금하다.

(각주- 자동기술법, 즉 오토마티즘-automatism)

무의식적 자동작용을 말한다. 앙드레 브르통이 창시한 초현실주의 시와 회화의 중요한 기법이다. 의식이나 의도가 없이 무의식의 세계를 무의식적 상태로 대할 때 거기서 솟구쳐 오르는 이미지의 분류를 그대로 기록하는 방법이다. 프로이트를 응용하여, 정신병 환자가 무의식적으로 지껄이는 상태를 비판이나 수정이 없이 그대로 기록하는 것을 말한다.      (Basic 고교생을 위한 문학 용어사전, 2006.11.5, (주)신원문화사)


(주-호안 미로,Joan Miro)

스페인의 화가, 판화가. 바르셀로나에서 출생. 마료루가도에서 사망. 1911년 양친이 준 바르셀로나 근교의 몬트로이구의 농장에서 거주함. 그의 예술은 고향인 카탈루냐 지방의 역사와 풍토에 깊이 관계되어 있다. 바르셀로나의 미술학교를 중퇴, 그곳 아카데미 가리에서 수학, 1918년 최초의 개인전을 그곳에서 개최함. 1919년 파리에서 생활함. 1921년 파리에서 최초로 개인전 개최. 1922년 『농장』을 그리고, 1923년 『경지』등으로 일대 전기를 이룸. 1924년 브르통, 아라공, 엘뤼아르 등과 친교, 초현실주의 예술가의 일원이 됨. 『아를르깽의 사육제』(1924~1925, 버팔로, 올브라이트 녹스아트 갤러리), 그외의 환각적·오토마티즘적 회화를 거쳐 오브제와 콜라주를 시도함. 1936년에 시작된 스페인 내전에 자극되어 그린 벽화의 대작 『추수』(1937년)를 파리만국박람회 스페인 공화국관에서 발표. 1940~1942년 제2차 대전의 전란 중에도 『성좌』를 연작함. 별, 여자, 새 등 상형문자적 형상을 구사하여서 유아적 천진난만함에 절묘한 기술이 매치된 시적 회화를 만들었다. 대전 후는 조각, 도기, 판화에도 뛰어난 작품을 많이 제작했다.                  (미술대사전(인명편), 1998, 한국사전연구사)



 호안 미로, 카탈루냐 풍경, 1923~24년, 캔버스에 유채, 65×100㎝, 뉴욕 근대미술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