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113] 귀족 도련님을 키운 중산층 가정교사와 유모들

바람아님 2013. 10. 19. 10:25

*출처-조선일보 2013.10.19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가정교사, 1739년, 캔버스에 유채, 46.7×37.5㎝, 오타와, 캐나다 국립 미술관.
장 바티스트 시메옹 샤르댕, 가정교사, 1739년, 캔버스에 유채, 46.7×37.5㎝, 오타와, 캐나다 국립 미술관.

갖고 놀던 장난감들을 바닥에 어질러 놓은 채 그대로 달려나가려던 도련님을 붙잡아 세운 건 그의 가정교사다. 모자의 먼지를 털어주며, 눈을 맞추고 차분히 타이르는 그녀 앞에서는 철없는 어린아이도 공손해진다. 이처럼 평범한 여인들과 아이들의 일상을 그린 그림으로 잘 알려진 샤르댕(Jean Baptiste Siméon Chardin·1699~1779)은 의외로 루이 15세가 무척 총애하던 화가다. 화려한 궁중 생활을 즐기던 프랑스 왕도 가끔은 소박하고 건전한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샤르댕은 단순한 색채와 부드러운 조명으로 고요한 집안의 분위기를 잘 살려냈다. 그의 작은 화면 속에는 두 개로 갈라진 상반된 세계들이 존재한다. 열린 문 너머에서 소년을 기다리는 바깥세상과 가정교사가 굳건하게 지키고 있는 가정의 질서, 장난감들이 주는 쾌락의 세계와 맞은편에 놓인 반짇고리가 상징하는 성실한 노동의 가치, 그리고 아직 배울 것이 많은 귀족 도련님과 교양을 갖춘 중산층 출신의 가정교사가 그들이다. 샤르댕은 왕후장상의 위대한 업적만을 그리던 이전의 미술에서 도외시했던 것들, 즉 가정과 여성, 중산층의 가치를 드러냈다. 어린 소년을 온전한 사회의 일꾼으로 만들어 내보내는 것이 바로 이들인 것이다.

그런데 눈에 띄는 것은 양육과 훈육을 책임진 '가정의 여성'이 '어머니'가 아니라는 점이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근대 이전까지 상류층 자녀의 양육은 유모와 가정교사의 몫이었다. 과거의 그 많은 위인은 말하자면 모두 '아줌마' 손에서 자란 아이들인 셈이다. 요즘 남의 손에 자녀를 맡기고 죄책감에 시달리는 '워킹맘'들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될지 모르겠다.



Jean Baptiste Siméon Chardin_The Governess,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