人文,社會科學/歷史·文化遺産

[이한상의 발굴 이야기] [25] 하수관 아래서 찾은 '신라史 퍼즐' 한 조각

바람아님 2018. 2. 21. 06:30

(조선일보 2018.02.21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과 교수)

1985년 3월 경주는 전국소년체전 준비로 부산했다. 환경미화 차원에서 월성로(月城路)의 아스팔트를 다시 포장하고 좌우에

매설된 하수관을 교체하기로 했다. 공사를 발주받은 건설회사는 중장비를 이용해 예전에 매설된 하수관을 파헤치기

시작했다. 그 과정에서 여러 점의 토기가 노출됐다. 불행 중 다행으로 경주박물관 직원이 그 장면을 목격, 공사가 중단됐다.


로마 유리그릇, 월성로 가-13 호묘, 국립경주박물관.로마 유리그릇, 월성로 가-13 호묘, 국립경주박물관.


3월 22일, 경주시의 요청으로 현장에 투입된 최종규

학예사 등 경주박물관 조사원들은 난감했다. 하수관

매립 부지이다 보니 발굴 구역의 너비가 채 2m가

되지 않을 정도로 좁았다. 기존 하수관을 이미 철거해

버린 터라 민가에서 배출한 오폐수가 수시로 밀려들었다.

악취가 코를 찔렀고 애써 발굴한 유물들은 매몰되기

일쑤였다.


악조건하에서도 어떤 유물이 언제 나타날지 알 수 없었기에

긴장은 계속됐다. 이윽고 경주에서는 출토되지 않았던 4세기

토기들이 무더기로 모습을 드러내자 조사원들은 일제히

환호했다. 오랜 세월 땅속에 숨겨져 있던 '신라사의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낸 것이었다.


발굴 과정에서 가장 많이 출토된 유물은 수백 점에 달하는

토기였다. 약 2세기 동안 만들어진 이 토기들은 신라 토기의

양식 변천 과정을 잘 보여주었다. 유물 가운데는 이국적 풍모를

지닌 것도 여러 점 있었다. 로마 유리그릇, 고구려산 연유토기,

왜(倭)로부터 반입된 돌 팔찌와 적색토기 등이다.

신라에서 가장 오래된 금 그릇과 금 귀걸이도 출토됐다.


발굴은 시작 3개월 만인 6월 하순에 종료됐다.

좁디좁은 도랑 속에서 찾아낸 신라 무덤은 56기에 달했다.

무덤의 일부만을 발굴할 수 있었고 발굴하지 못한 부분은 지금도 여전히 도로 아래에 그대로 묻혀 있다.

한계가 많았지만 월성로 하수관 아래서 발굴된 신라 무덤과 유물들은 4세기 신라의 중심지도 그 이후와 마찬가지로

경주 시내였음을, 그 시기의 신라가 사서(史書)의 기록처럼 성장을 거듭하던 '다이내믹'한 나라였음을 웅변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