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62] 동굴 속처럼 아늑한 사우나

(조선일보 2018.04.02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캐나다 온타리오주(州) 브루스반도의 국립공원에 있는 작은 마을인 '더 그로토(The Grotto)'는 바위 절벽과 동굴로 유명한

관광지이다. 그로토는 이탈리아어로 '작은 동굴'을 뜻한다.

휴론 호수가 내려다보이는 산책로인 '조지안 베이 트레일'을 따라가며 기억에 남을 만큼 아찔한 경험을 하고

물놀이와 천연 바다 동굴 탐사 등을 즐길 수 있다.요즘 더 그로토가 새삼 주목받는 것은 독특하게 디자인된 사우나 덕분이다.

깎아지른 절벽 밑단의 호숫가에 설치된 회원제 사우나는 전통적인 장인정신과 최첨단 지속 가능성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사다리꼴 부지에 맞춰 지은 사우나의 외관은 전통 일본식 탄화목 가공 방법대로 검게 그을린 삼나무 원목으로 마감하여

따뜻한 느낌을 줄 뿐만 아니라 주변 경관과 잘 어울린다.

캐나다 그로토 사우나(Grotto Sauna). 면적: 74㎡(약 22.5평), 2014년 국제디자인상(IDA) 금상.

사우나 내부는 지역의 특성을 살려 동굴 속처럼 부드러운 곡면이라 아늑하고 편안한 기분이 든다.

벽과 천장에 유리창들을 설치하여 어디든 앉아서 멋진 경치를 즐기며 찜질을 할 수 있다.

계절에 따라 환기를 적절히 조절해주는 최첨단 공조 시스템 덕분에 에너지 운영이 효율적이다.

내부 마감재인 삼나무 목재는 향기와 색채가 풍부하고 부식이 잘 안 되는 데다 그 지역에서 쉽게 구할 수 있어 제격이다.

토론토의 디자인 회사 파르티잔(Partisans)과 목공소 MCM의 공동 작품인 이 사우나는 시공이 까다롭고 부지가 협소해서

공장에서 제작한 다음 바지선으로 운반·설치되었다. 사적(私的)인 시설이라는 이유로 의뢰인이나 건축 비용은

공개되지 않았다. 다만 당초 디자인팀이 제시한 15가지 안(案) 가운데 제작과 설치가 제일 어려운 것을 선택했다는

사실만 알려졌다. 시공 비용을 줄이는 데만 급급하지 않고, 가장 모험적인 디자인을 고른 건축주의 도전 정신과 안목이

이룬 성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