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16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노브랜드(No Brand)가 주목받고 있다. 상품에 특정 브랜드를 붙이는 대신, 쌀·비누·우유 등 일반적인 제품 이름과
법률로 정해진 사항만을 기재하는 노브랜드 상품은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높기 때문이다.
일본 노브랜드 업계의 원조 격인 무인양품(無印良品)은 1980년 세이유 백화점이 40가지 저가 생활용품과 식품에
MUJI(일본어로 노브랜드)라는 이름을 붙인 데서 유래되었다. 1983년 그래픽 디자이너 다나카 잇코(田中一光)와 유통 전문가
쓰쓰미 세이지(堤淸二)가 MUJI라는 상호로 도쿄에 직영점을 연 뒤 크게 번창해서 1989년 세이유로부터 독립했다. 1991년
런던에 첫 해외 매장을 열었으며, 현재 24개국의 930여 개 매장에서 7000여 종의 상품을 판매하는 글로벌 브랜드로 성장했다.
MUJI의 기업 포스터‘지평선’(Horizon), 아트 디렉터: 하라 겐야, 2003년.
MUJI의 목표는 고객들이 '최고는 아닐지라도 이만하면 충분하다'고 느끼도록 하는 것이다. 공동 창업자이자 초대 디자인
책임자였던 다나카는 품질이 좋은 제품을 싸게 팔 수 있게 해주는 소박한 디자인을 추구했다. 2001년 제2대 디자인책임자로
선임된 하라 겐야(原硏哉)도 제품·매장·광고 등을 간소하게 디자인하는 전통을 이어가고 있다. 하라가 부임 초기에 디자인한
'지평선'이라는 기업 광고 포스터에는 그런 간소함이 묻어난다. 남미 볼리비아의 드넓은 사막에는 흰색 MUJI 로고와 한 사람의
검은색 뒷모습이 대비를 이룰 뿐 깨끗하게 비워져있다. 비워야만 채울 수 있다는 MUJI의 디자인 이념을 반영한 것이다.
꼭 필요한 데만 집중하여 거품을 모두 빼내는 MUJI의 '비우는' 디자인은
미니멀리즘(minimalism·단순함과 간소함을 추구하는 미술)과 일맥상통한다.
보는 사람에게 강요하는 듯한 장황스러운 설명이 없어서 제각기 나름대로 감상하고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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