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젊은이들이 건축적 안목을 보여주는 새 방법

바람아님 2018. 5. 3. 07:54

(조선일보 2018.05.03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셰어 하우스·에어비앤비 등 부동산·여행도 '공유' 붐
과거엔 소유가 전부였다면 지금은 경험과 소비 더 중시
'내 공간'이자 '나' 자체인 SNS·사이버공간이 승부처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가


요즘 '공유 경제'가 유행이다. 특히 건축 분야에서 두드러진다.

이런 현상은 부족한 공간을 모든 사람이 다 직접 소유할 수는 없는 현실 요인이 크다.

개인의 '소유'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자본주의와 달리 '함께 소유한다'는 '공유(共有)'는

사회주의적 요소가 있다.


그렇다고 사회주의적 분배로 해결할 수는 없으므로, IT의 도움을 받아 수요와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방법이 형성되고 있다.

그 핵심은 몇 년 단위이던 소유의 시간을 며칠 혹은 더 짧은 몇 시간 단위로 바꾸는 것이다.

쉽게 말해 짧은 시간 단위로 소유함으로써, 누구나 소유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든 게 공유 경제이다.


간단한 방정식으로 표현해 본다면 '공유경제=(사회주의 × IT)÷자본주의'인 셈이다.

예컨대 해외에 멋진 별장을 가질 수는 없지만, '에어비앤비'를 통해 며칠이나 몇 주 단위로 내가 원하는 집을 즐길 수 있다.

포도밭이 딸린 프랑스의 샤토(城·성)에 며칠 머무르면서 영주(領主)가 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


과거에는 2년 단위의 전세였다면 지금은 몇 달 단위로 '셰어 하우스'를 계약한다.

인테리어가 잘된 모텔방을 시간 단위로 빌리기도 한다.

기사 딸린 자가용을 소유할 수는 없지만 몇만원에 '카카오 블랙'이나 '우버'를 통해서 회장님처럼 고급 승용차의

뒷자리에 앉는 호사를 누릴 수도 있다.


디지털 기술은 부동산 개념에도 변화를 촉발했다.

내가 소유할 수 없는 공간이지만 그 공간을 사진으로 찍어서 내 홈페이지에 올리면 그게 내 공간이 되기 때문이다.

내가 실제 세상에서 소유할 수 없는 공간을 디지털 정보로 만들어서 사이버 공간에 내 공간을 구축하는 것이다.

SNS에 사진을 올리는 것도 같은 일이다. 이처럼 현대사회에선 실제 소유와 디지털 소유의 개념이 중첩되고 있다.

이런 일이 가능해진 것은 인터넷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휴대폰 카메라의 성능이 향상된 게 결정적이다.


휴대폰의 고성능 카메라는 우리의 공간을 바꾸었고,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콘텐츠 제작자가 될 수 있다.

과거에는 어느 동네에 몇 평짜리 집에 살고 무슨 차를 모느냐로 신분과 능력이 드러났다.


내가 소유한 물건들의 스펙이 나를 드러내는 전부였다.

그러나 지금은 SNS에 내가 찾아간 카페 사진과 여행 간 호텔의 사진으로 내 공간을 만들어 나를 표현할 수 있다.


칼럼 관련 일러스트
일러스트=이철원


내가 '소유'한 공간으로 나를 보여주는 게 아니라, 내가 '소비'한 공간으로 나를 대변하는 시대가 활짝 열린 것이다.

페이스북과 인스타그램에 계속해서 자신이 간 맛집과 여행지와 자신이 읽은 책을 포스팅하는 것은 이런 배경에서다.

맛집 포스팅은 내가 음식 문화도 향유(享有)할 줄 안다는 점을 알려주고, 유명 여행지의 럭셔리 호텔을 이용하는 것은

나의 건축적 안목(眼目)을 보여주고, 내가 올린 책의 서평은 나의 지적(知的)인 부분을 부각시켜준다.

이런 콘텐츠를 통해 나의 사이버 공간을 만들고, 이는 곧 디지털 시대에서 '나' 자체를 만드는 일이다.

이제는 내 실제 얼굴보다는 셀카 사진이 더 중요하다.

내가 얼마나 행복한가는 내 SNS에 환하게 웃는 행복한 사진이 몇 장 올라갔느냐로 결정 난다.

가상공간의 정보가 실제를 압도하는 사회이다.

학자들은 '왓슨'과 '크릭'이 DNA 개념을 도입하면서 생물학이 유기체의 연구에서 정보의 연구로 해석되기

시작했다고 평가한다. 마찬가지로 인터넷으로 인해서 우리의 삶도 정보로 해석되고, 의미가 부여되는 세상에 살게 됐다.


SNS는 소식만 올리는 곳이 아니다.

사무실 책상에 사진을 붙이고 화분을 가져다 놓음으로써 단순한 책상을 의미있는 내 공간으로 만들 듯이,

휴대폰 카메라만으로 사이버 공간에 나만의 가치있는 공간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과거에는 내가 사는 집을 다 보여줄 수 없었지만, 지금은 SNS를 통해 내가 살거나 경험한 공간을

보여주고 싶은 부분만 '편집'해서 보여줄 수 있다.


현대 사회에서 페이스북과 인스타는 나의 공간이며 더 나아가 '나' 자체이다.

향후 블록체인이 상용화되면 우리의 공간에 또 한 번 변화의 파도가 올 것이다.

그때가 되면 제2의 구글, 페북, 인스타도 나올 것이다.

우리 사회가 그 파도를 거부하기보다는 변화의 큰 파도 위를 멋지게 잘 타는 서퍼가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