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4.30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나는 사람도 형제도 아닙니까(Am I not a man and a brother)?"
쇠사슬로 손발이 묶인 흑인 노예가 무릎을 꿇린 채 하늘을 보며 절규하는 모습이 애처롭다.
영국 도자기회사 웨지우드의 창업자인 조시아 웨지우드(Josiah Wedgwood·1730~1795)가 1787년
흑인 노예들의 참담한 실상을 알리려고 제작한 목걸이 메달에 새겨진 문구와 부조(浮彫)이다.
청교도적인 성향을 갖고'범(汎) 대서양 노예무역 폐지 운동' 확산을 위한 캠페인에 앞장선 웨지우드는
조각가 헨리 웨버와 모형제작자 윌리엄 해크우드에게 의뢰하여 디자인한 메달을 사회지도층에 무상으로 배포했다.
웨지우드의 노예 해방 메달, 규격 : 30 x 27 x 3mm, 1787년.
점차 노예제도를 반대하는 여론이 높아져서 그 디자인이
대중적인 아이콘이 되자, 웨지우드는 장신구와 차(茶) 상자,
담뱃갑, 접시 등 다양한 제품에 응용하여 유럽과 미국 등지로
수출해서 캠페인의 효과를 높였다.
아울러 미국에서 노예 해방 운동을 이끌던 벤저민 프랭클린을
격려하기 위해 장신구를 상자에 가득 채워 보내는 등
국제적인 협조체제를 다졌다.노예해방을 위한 청원,
안내 책자와 팸플릿의 배포, 장신구의 보급은 웨지우드가
사망한 후에도 이어졌다.
마침내 영국 의회는 1807년 노예무역을 불법화하였고
1833년에는 노예제도 폐지법을 통과시켰다.
미국에서도 1865년 헌법을 수정하여 노예제도를 없앴다.
사업가로서 웨지우드는 품격 높은 디자인과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최고의 제품을 만들어 큰 부(富)를 일구었다.
그 부의 일부는 외손자 찰스 다윈(Darwin·1809~1882)이
세계를 일주하고 1859년 '종의 기원'을 출판하는 등
생물진화론을 세우는 데 쓰였다.
다윈은 남미 대륙을 여행하던 중, 여전히 백인 주인들이 흑인 노예를 학대하는 것을 보고 노예제도에 극력 반대했다.
외할아버지의 고귀한 정신과 열정을 계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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