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21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
성수동 카페처럼 높은 천장 즐기고 테라스·마당 찾는 게 최신 유행
부동산 가격 면적으로만 책정해 획일·표준화된 건물이 대부분
복층형 공간·경사 천장 등 다양한 주거공간 만들어야
유현준 홍익대 교수·건축학
우리나라는 전쟁 이후 극심한 주택난에 시달렸다.
그래서 최대한 빨리 많은 주택을 공급하는 게 정부의 목표였다. 그러다 보니 '표준화'된 아파트의
'대량 생산'이 당시 최선의 선택이었다. 전형적인 근대화적 접근이다. 덕분에 단기간에 주택난은
상당 부분 해결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과정을 거치면서 모든 주택이 '최소한의 표준화'만 있게
된 것이다. 낮은 천장 높이도 그중 하나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천장 높이는 2.4m이다. 머리 안 부딪히고 생활할 만한 최소한의 천장 높이다.
이는 조선시대 한옥(韓屋)보다도 낮다. 한옥은 빗물 배수와 건축 구조적인 이유로 경사 지붕이다.
그러다 보니 가운데 대들보 부분은 상당히 높다. 그런데 보일러, 엘리베이터, 철근 콘크리트 재료가 보급되면서
우리는 고층 아파트에 살게 되었다. 높이 제한을 피하고 공사비를 아끼면서 최대한 많은 가구 수를 만들려다 보니
최소한의 천장 높이인 2.4m가 나왔다. 대부분의 국민이 다 이렇게 살고 있다.
이러한 획일화된 낮은 천장 높이에서 탈피하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근본적으로 우리나라 부동산 가격책정 방식이 잘못되어서이다.
우리나라는 부동산 가격을 책정할 때 '면적'에 근거해서 계산한다.
그런데 사실 공간은 면적보다는 '체적(體積)'이 중요하다.
같은 면적이라도 높은 천장 높이의 공간에서 훨씬 더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경험상 다 알고 있다.
항상 2.4m의 낮은 천장 높이에서 생활하다 보니 우리는 높은 천장 높이의 공간을 찾아서 헤맨다.
천장이 높은 공장 건물을 리모델링한 성수동의 카페가 인기 있는 이유다.
사무 공간도 천장 마감재를 다 뜯어내는 추세다. 미네소타 대학의 실험에 의하면 2.4m보다는 3m의 천장 높이일 때
창의력이 2배가 늘어난다는 연구도 있다.
이렇듯 소비자는 높은 천장 높이를 원하는데 건설업자가 안 만드는 이유가 있다.
천장 높이를 높이면 높이 제한 때문에 가구 수가 줄어들게 되어서 손해가 되기 때문이다.
만약에 우리의 아파트를 면적이 아닌 체적으로 가치 측정을 한다면 높은 천장 높이, 복층형 공간, 경사 천장 등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이 만들어질 것이다.
현재의 '2차원적인' 부동산 가격책정 방식이 공간의 다양성을 죽이고 있다.
/일러스트=이철원
부동산 가치책정 기준의 문제는 면적 중심뿐만이 아니다. 부동산 가격이 '실내' 면적 중심으로 측정된다는 점도 문제다.
16.5㎡(5평)짜리 테라스가 있는 100㎡(30평)짜리 아파트와 테라스 없는 116㎡(35평)짜리 아파트 중 하나를 고른다면
필자는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를 택할 것이다.
그 이유는 하늘을 볼 수 있는 테라스 공간이 집에 큰 가치를 주기 때문이다.
테라스가 있는 세대가 분양이 잘된다는 사실은 분양업자들은 경험상 다 안다.
그만큼 사람들은 테라스와 마당 같은 외부 공간을 원한다.
현대인들은 하늘을 보는 외부 공간을 찾아서 루프탑(rooftop) 카페를 찾고 마당이 있는 서울 종로구 익선동을 간다.
그런데 외부 공간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가 있는 아파트가 드문 이유는
돈 들여 만든 테라스에 정당한 가치 보상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테라스가 있어도 부동산 관련 장부에 명시되지 않으며, 분양 시 테라스 면적에 대해서는
건설업자가 돈을 받을 수가 없다. 돈이 안 되니 안 만드는 것이다.
필자는 하늘을 향해 열려있는 크기와 비례가 적절한 테라스 공간은 실내 면적보다 1.2배로 계산해서
분양 면적에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부동산 업자들은 테라스가 있는 다양한 형태의
주거 공간을 너도나도 만들 것이다.
자연을 즐길 수 있는 테라스를 더 많이 만들게 유도하기 위해서 하늘이 보이는 2개 층 이상 오픈된 테라스는
건폐율에서 부분적으로 빼주는 촉진책도 고려해볼 만하다.
이런 '당근'이 있으면 건설업자들은 너도나도 다양한 형식의 외부 공간을 갖춘 주거 형식을 시도할 것이다.
우리의 주거 공간은 획일화되어 있다. 건축 공간의 다양성이 없다 보니 가치 측정은 가격밖에 없다.
집의 모양을 똑같이 했더니 이제는 집의 가격도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고 아우성이다.
이렇듯 우리나라 건축은 전체주의로 가고 있다.
대량 공급을 위해서 획일화했고, 그렇게 획일화된 주거 양식이 사회적 갈등과 잠재적 위험을 키우고 있다.
21세기의 대한민국은 다양한 공간, 다양한 가치가 있는 주거 문화로 바뀌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부동산의 가치 판단 기준이 면적에서 체적으로 바뀌고,
사적(私的)인 외부 공간도 정확하게 건축대장과 분양면적에 포함시켜야 한다.
자본주의에서 가치는 가격으로 드러난다.
건축 공간의 실제 가치가 정당한 가격으로 책정되는 시스템이 곧 사회 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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