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18.06.25 정경원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폴란드의 옛 수도 크라쿠프시의 코시치우슈코 동산을 보면 단아한 모습에 탄성이 절로 나온다.
서울 인왕산보다 조금 낮은 시코닉산(해발 326m) 위에 있는 원뿔형 인공 동산에는 나선형 길이 정상의 전망대까지
나 있어 쉽게 올라 도시 전경을 내려다볼 수 있다.
코시치우슈코 동산,
밑면 지름: 80m, 높이: 34m, 1853년.
이 동산은 16세기 중부 유럽의 최강국이던
폴란드가 외세의 침략으로 분할되었을 때,
독립 항전을 이끌었던 타데우시 코시치우슈코
장군을 기리려고 조성되었다.
바르샤바 사관학교 출신으로 미국 독립전쟁에
참전했던 장군은 1794년 점령군을 몰아내기
위해 봉기했으나 러시아·프러시아·오스트리아
연합군에 패하여 시베리아로 유배되었다.
그 이듬해 폴란드가 멸망하자 장군은 해외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을 계속했다.
1817년 장군이 스위스에서 사망하자 크라쿠프
시민들은 유해를 바벨대성당에 안치한 데 이어,
독립 정신의 구심점이 될 동산을 만들기 위해
모금 운동을 전개했다. 옛 폴란드 전역에서
답지한 성금으로 1850년부터 전통적인 진지
구축 방식대로 공사를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으로 3년 만에 완공된
동산에 장군의 유골이 모셔졌고, 그가 참전했던
폴란드와 미국 지역에서 가져온 흙이 채워졌다.
하지만 완공 이듬해부터 폴란드인들의 출입이
철저히 봉쇄됐다. 독립운동이 번질 것을 우려한
오스트리아 점령군이 동산을 군사시설로 수용하여
주변에 벽돌 성채를 쌓고 망루를 세웠기 때문이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크게 파손된 동산은
독립된 폴란드 정부와 시민들의 노력으로
재건되었다. 1997년 폭우로 거의 붕괴되었으나, 2003년 최신 하수 처리 및 방수막 기술로 복원되었다.
폴란드인들의 끈질긴 독립 정신을 상징하는 호국 동산은 갖은 외압에도 굴하지 않고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文學,藝術 > 디자인·건축'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75] 월드컵 주심이 찬 명품 시계 (0) | 2018.07.02 |
---|---|
장대-화려함에 파스텔톤 도배… “체제선전 위한 거대 세트장” (0) | 2018.07.01 |
[유현준의 도시이야기] 루프탑 카페와 종로 익선동이 뜨는 이유 (0) | 2018.06.21 |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73] 월드컵 포스터로 부활한 '골키퍼의 神' (0) | 2018.06.18 |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72] 당근 껍질과 藻類로 만든 핫도그 (0) | 2018.06.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