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디자인·건축

[정경원의 디자인 노트] [173] 월드컵 포스터로 부활한 '골키퍼의 神'

바람아님 2018. 6. 18. 07:32

(조선일보 2018.06.18 세종대 석좌교수·디자인 이노베이션)


FIFA 월드컵 2018 러시아 공식포스터, 디자인: 이고리 구로비치, 2018년.FIFA 월드컵 2018 러시아 공식포스터, 디자인: 이고리 구로비치, 2018년.


레프 야신(Lev Yashin·1929~1990)은 러시아 축구의 전설이다.

1950~60년대에 러시아 대표팀 골키퍼로 활약한 야신은 페널티킥을 150여 개나

막아내어 '거미 손'이라 불렸고, 검은색 유니폼을 즐겨 입어 '검은 문어'라는 별명도 있었다.

1956년 멜버른 올림픽에서 러시아 축구팀의 우승을 이끈 야신은 1963년 골키퍼로는

유일하게 세계 축구의 영예인 '발롱도르(Ballon d'or)'를 수상했다. FIFA는 1994년

미국 월드컵부터 본선에서 최고의 성적을 거둔 골키퍼에게 '야신상(賞)'을 수여하고 있다.


한동안 잊혔던 야신이 'FIFA 월드컵 2018 러시아'의 공식 포스터에 특유의 검은색

유니폼과 모자를 쓰고 등장했다. 러시아 출신 화가 이고리 구로비치(Igor Gurovich)가

디자인한 포스터는 야신이 대각선 방향으로 몸을 날려 지구를 상징하는 축구공을 손으로

막아내는 모습에 초점을 맞추었다. 큰 초록색 원과 대비되는 주황색 선들이 축구공을

향해 방사형으로 집중되어 강한 속도감과 에너지가 부각된다.

보는 각도에 따라 공으로부터 선들이 뻗어나가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포스터에 등장하는 대상의 구도와 배치를 용의주도하게 조정하여 보는 사람의 시선을 유도하는 것은 1910년대부터

러시아에서 크게 유행했던 미술 사조인 구성주의(Constructivism)와 일맥상통한다.

전설적인 야신을 앞세워 과거 러시아 축구의 영광을 되살리려는 의지를 표현하려고 잘 계획된 기하학적인 구성,

대비가 되는 색채, 견고한 서체로 쓴 구호 등을 적용하여 구성주의적인 복고풍으로 디자인한 것으로 이해된다.

하지만 재미있는 콘텐츠와 자유분방한 화면 구성을 추구하는 요즘의 포스터 디자인 트렌드와는 다소

동떨어진다는 느낌을 거둘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