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 2018.07.19. 00:09
미국의 경제 저널리스트인 헨리 해즐릿(1894~1993)이 1946년 출간한 《경제학의 교훈》은 지금도 미국 경제학도들이 탐독하는 스테디셀러다. 그는 이 책을 통해 대중에게 자유시장경제 원리를 널리 알렸다. 수요와 공급 등 다양한 경제법칙을 쉽게 설명하며 경제 현상을 분석했다. 1974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프리드리히 하이에크는 “경제학 문외한도 짧은 시간에 경제학 기본 진리를 배울 수 있는 책”이라고 평가했다.
해즐릿은 “자유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 상품가격과 임대료 통제, 과도한 최저임금 인상 등의 정부 개입은 필연적으로 시장 왜곡과 국민 고통 증가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런 정책들이 나오는 배경은 “자유시장경제 체제 오류 때문이 아니라 단기 성과에 집착하는 정부와 대중의 조급증(躁急症)과 이를 악용하는 정치권의 합작품”이라고 갈파했다.
시장 왜곡하는 가격통제의 수렁
해즐릿은 실업, 불황 등 경제 문제의 상당수는 경제학 원리를 무시한 정책적 오류에서 발생한다고 진단했다. 정책적 오류 중 흔히 저지르는 실수가 정부의 시장 개입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의도가 선하면 ‘좋은 정책’이라고 생각하는 무지(無知)가 시장 개입을 부른다고 강조했다.
“정부가 가격에 개입하면 결과는 참혹해진다. 판매가가 정상가보다 싸게 매겨져 수요는 필요 이상으로 폭증한다. 반대로 공급은 급감하고 품질은 떨어진다. 좋은 제품을 서민에게 싼값에 안정적으로 공급하려고 했던 정책 의도와는 달리 서민은 더 고달파진다.”
해즐릿은 한 번 가격을 통제하면 되돌리기 어려운 악순환에 빠진다고 지적했다. “가격 통제의 결과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바와 같다. 이런 와중에 기득권자의 집단 반발 탓에 ‘개혁(가격 통제)’이 좌초했다는 주장이 난무한다. 일부 정치인은 생필품 가격 등이 높은 것은 자신들이 만들어낸 규제 탓이 아니라 자본가의 탐욕 때문이라고 책임을 떠넘기기도 한다.”
그는 임대료 규제는 포퓰리스트(대중인기영합주의자)가 즐겨 외치는 선전문구라고 했다. “주택 공급이 달리면 임대료는 올라간다. 공급 부족이 임대료를 밀어 올리는 것이지만 대중의 눈에는 임대업자가 올리는 것처럼 보인다. 이로 인해 대중은 임대업자에게 분노한다. 물을 만난 물고기 마냥 포퓰리스트는 지지 세력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는다. ‘가진 자’와 ‘갖지 못한 자’의 갈등 구조로 비화시킨다.”
해즐릿은 ‘정책 실패를 인정하지 않는 정치’가 가장 큰 정책 리스크라고 지적했다. “규제론자들은 민간이 실패했기 때문에 정부가 더욱 깊숙이 개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임대료 규제의 마지막 아이러니는 정책 실패가 클수록 정부 개입이 더 필요하다는 정치적 주장이 더 뜨거워진다는 것이다.”
해즐릿은 기업과 시장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을 벗어난 최저임금인상의 위험을 경고했다. “과도한 최저임금의 피해자는 최저임금이 보호하려는 청년과 여성 등 비숙련자다. 최저임금이 오르면 이들의 일자리부터 줄어든다. 노동생산성을 웃도는 임금 인상은 약자에겐 재앙이다.”
'전능한 정부'는 시장 개입 지름길
그는 임금 인상과 생산성 향상이 직결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임금을 올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이 아니라 노동생산성을 높이는 것이다. 임금 상승은 최저임금을 좌지우지하는 정부의 명령에서 나오는 게 아니라 생산성에서 나온다. ”
해즐릿은 노동권 보호에서 벗어나 기득권 수호 집단으로 변질되고 있는 일부 노동조합의 행태도 비판했다. “노조가 장기적으로 노동자 전체의 실질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믿음은 과장됐다. 일부 기득권 노조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비조합원을 희생시키는 경우가 적지 않다.”
해즐릿은 사회에 만연한 반(反)기업·친(親)노조 정서가 고용시장을 왜곡시킨다는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았다. “포퓰리즘이 난무하는 곳 중 하나가 노동 분야다. 노조의 정치적 영향력이 크기 때문에 정치인들은 기업인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노동법을 강요한다. 기업인을 궁지에 몰아넣는 것보다 더 확실하게 고용을 방해하는 방법은 없다.”
그는 개입주의가 발호하는 근본 원인은 시장경제와 자기책임 원칙을 외면하는 데 있다고 진단했다. “대중은 어떤 문제가 터질 때마다 ‘도대체 정부는 무엇을 했느냐’고 아우성친다. 오늘날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요한 문제는 경제적인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것이다. ‘전능(全能)한 정부’를 요구하는 대중과 이를 시장 개입의 명분으로 악용하는 정치 탓이다.”
해즐릿은 자본주의의 근간인 시장경제와 자기책임 원칙을 중시해야 왜곡된 사회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정부 역할은 시장을 지원하는 데 머물러야 한다고 덧붙였다.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일화는 자유시장경제를 표방하는 정부의 역할이 어때야 하는지를 알려준다. 대왕이 ‘무엇을 해 드릴까요?’라고 물었을 때 디오게네스는 ‘햇빛을 가리지 않도록 조금만 비켜주십시오’라고 답했다. 시민과 기업가는 정부에 이렇게 요구할 권리가 있다.”
김태철 논설위원 synerg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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