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94] 유럽에서 배운 인상주의, 유럽 구원할 자부심 되다

바람아님 2013. 11. 15. 20:43

(출처-조선일보  2013.01.22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차일드 하삼 '빗속의 거리' - 1917년, 캔버스에 유채, 

106.7×56.5㎝, 미국 워싱턴DC 백악관 소장.



재선에 성공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009년 처음 대통령에 취임했을 때, 백악관의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를 새롭게 단장하면서 책상 옆에 걸었던 그림이 바로 미국의 인상주의 화가 차일드 하삼(Childe Hassam·1859~1935)의 '빗속의 거리'다.

아동 도서의 삽화가로 시작해 화가가 된 하삼은 1886년 프랑스 파리로 이주해서야 처음으로 정식 미술 교육을 받았다. 그때 파리의 미술계는 인상주의 열풍에 휩싸여 있었다. 따라서 전형적인 인상주의 회화의 특징인 밝고 경쾌한 색채, 스케치처럼 자유분방한 붓놀림, 부스러지듯 짧고 느슨한 윤곽선 등이 하삼의 화폭에도 나타난다. 하지만 하삼이 인상주의에서 배운 가장 중요한 것은 그림 기법이 아니라 주제였다. 인상주의자들은 관습적인 그림이 아니라 바로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여기의 풍경을 그리고자 했다. 하삼의 작품이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확연히 다른 이유가 여기 있다. 그는 파리 샹젤리제보다 뉴욕 5번가를 더 사랑했고, 파리의 화사한 여름 하늘보다 눈보라가 몰아치는 뉴욕의 잿빛 하늘에 더 깊이 매료되었던 것이다.

'빗속의 거리'는 1916년, 1차 세계대전 중 고립 정책을 고수하던 미국 정부에 참전을 요구하는 시민들이 뉴욕의 5번가에서 벌였던 행렬을 그린 것이다. 빨강·파랑·하양을 거칠고 성기게 덧칠해 표현한 성조기들은 마치 빗물이 줄줄 흐르는 유리창을 통해 내다본 것처럼 아른거린다. 하삼은 프랑스에서 배운 인상주의 기법으로 곧 프랑스를 전화(戰禍)로부터 구원하게 될 미국인들의 자부심을 표현한 것이다.

지금 서울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에 마련된 '미국 인상주의 특별전'에서는 하삼의 다른 작품을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