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리 [95] 종말의 공포… 언제 '末世' 아닌 적 있었던가

바람아님 2013. 11. 17. 18:30


(출처-조선일보  2013.01.30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알브레히트 뒤러 '묵시록의 네 기사'… 

1497~1498년, 목판화, 39.9×28.6㎝, 

독일 카를스루에 국립미술관 소장.



종말론은 대체로 세기말(世紀末)에 고개를 든다. 종말을 예언한 대표적 종교가 기독교이고, 세기가 기독교식 기년법(紀年法)이다 보니 그렇다. 세상의 마지막 날, 지상의 선(善)과 악(惡)이 궁극의 전투를 치르고 예수 그리스도가 재림한다고 하는데 과연 그것이 언제인지 알 수 없으니 한 세기의 '끝'이 올 때마다 사람들이 불안에 떠는 것이다.

북유럽의 르네상스 최고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1471~1528)가 판화집 '묵시록'을 출판한 것도 15세기 말이었다. 흔히 '묵시록(默示錄)'이라고도 부르는 '요한 계시록'은 세상의 종말과 인류 최후의 순간을 난해한 상징을 사용해서 묘사한 신약성서의 마지막 장이다. 뒤러의 '묵시록'에 실린 15점의 판화 중 '묵시록의 네 기사(騎士)'는 '요한 계시록'의 6장 1절에서 8절까지의 내용을 도해(圖解)한 것이다.

최후의 날이 오면 네 명의 기사가 세상에 들이닥친다. 활을 든 정복자, 검을 든 전쟁, 천칭을 든 기근, 마지막으로 바싹 마른 말을 탄 죽음이다. 죽음의 뒤를 따르는 끔찍한 괴물, 하데스는 공포에 질려 서로 뒤엉켜 있는 사람들을 가차없이 집어삼키고 있다. 지금 막 하데스의 입으로 빨려 들어가는 이는 성직자다. 죽음은 신분을 따지지 않는다.

뒤러의 '묵시록'은 삽시간에 전 유럽으로 퍼져 나가 그에게 상당한 부와 명성을 안겨주었다. 저렴한 가격에 대량생산이 가능한 판화집을 공들여 제작했던 뒤러의 마케팅 전략이 잘 들어맞은 덕이다. 한 편에는 전쟁과 기아·죽음의 공포가 도사리고 있고, 다른 한 편에서는 그 공포를 이용해 돈을 벌었다. 이런 게 '말세(末世)'라면, 언제 '종말'이 아닌 적이 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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