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아트칼럼

우정아의 아트 스토 [96] 美 미술계 자극 주려 했던 그림… 그 실패가 '모스 부호'를 낳았다

바람아님 2013. 11. 19. 09:25

(출처-조선일보  2013.02.14 우정아 포스텍 교수·서양미술사)


미국 화가 새뮤얼 모스(Samuel F B Morse·1791 ~1872)는 1830년 파리의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하여 소장품 중에서도 빼어난 명작만 모아놓은 전시실인 '살롱 카레'의 모습을 큰 캔버스에 그대로 옮겨 그렸다. 온 벽에 빼곡하게 걸려 있는 서른여덟 점의 그림은 대부분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왼쪽 벽은 베로네세의 '가나의 결혼식'이 차지하고 있고, 정면 제일 아랫줄에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가 걸려 있다. 그 벽의 왼쪽 끝에는 카라바조의 '점쟁이', 오른쪽 끝에는 라파엘로가 그린 '성모자상(聖母子像)'이 있다.


새뮤얼 모스 '루브르 갤러리'… 1831~1833년, 캔버스에 유채, 180×274㎝, 시카고 테라 미국미술재단 소장.


그림의 모습은 모스가 방문했던 당시의 실제 전시실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몇몇 작품은 그가 임의로 그려넣거나 위치를 옮기기도 했다. 어쨌든 모스는 각각의 작품을 정밀하게 묘사했고, 그 덕에 루브르에 가 본 적이 없는 사람이라도 이 그림을 보면 그 전시실 분위기를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전시실에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가 몇명 등장한다. 그 중 한가운데에 앉은 젊은 여인이 모스의 딸이고, 그 등에 기대서서 이야기를 나누는 이가 모스 자신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루브르박물관은 미술가들이 전시실에서 소장품을 베껴 그릴 수 있도록 허가해주었다. 과거의 걸작을 모사(模寫)하는 것이 미술 교육의 필수 코스였기 때문이다.

이 작품은 모스의 야심작이었다. 유럽에 비해 한참 뒤떨어진 미국의 미술계에 루브르의 걸작들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새 자극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그러나 미국 대중의 반응은 차가웠다. 실망한 모스는 화업(畵業)을 포기하고, 발명가가 된다. 그러고 나서 그가 만든 것이 바로 전신기와 모스 부호다. 이쯤 되면 그때 실패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을 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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