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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칼럼 The Column] '고용 세습'의 뿌리는 철밥통이다

바람아님 2018. 10. 24. 06:37

(조선일보 2018.10.24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욕먹어도 상관없다, 과태료만 내면 그만'이라며 기득권만 챙기는
대기업·공공 부문 노조를 파트너로 '대접' 말고 정부는 약자를 챙겨야


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윤희숙 KDI국제정책대학원 교수


공공 부문의 고용 세습, 채용 비리 의혹이 연일 국정감사장을 도배하고 있다.

세습을 시도하고 비리를 도모할 정도로 공공 부문 일자리가 대단해졌다는 게 놀랍다면

우리나라 노동시장의 첨예한 세대 갈등을 체감하지 못한다는 뜻이다.


공공 부문은 말 그대로 철밥통이다. 아무리 태만하고 무능해도 해고는 실질적으로 불가능하다.

해마다 청년들은 노동시장에 쏟아져 나오는데, 좋은 일자리는 턱없이 모자라니 보수 높고 안정된 공공 부문 인기가

하늘을 찌른 지 20여년이다.


문제는 아무리 우수하고 열정적인 신입이 들어와도 철밥통 구조이다 보니 정규직 진입이 어렵다는 것이다.

기존 인력과의 형평을 생각하면 당연히 정규직으로 전환돼야 하지만, 이는 앞으로 들어올 비정규직의 미미한

가능성마저 없애게 되니 쉬운 결정이 아니다.

기관으로서는 최대한 조심스럽고 공정하게 정규직 전환을 관리하는 것 말고는 다른 수가 없다.


이 판국에 작년 말 정부가 나서 무조건 비정규직을 기한 내에 없애라고 압박했으니 심각한 부작용은 이미 훤히

내다보였다. 무엇보다 올해가 지나면 신규 채용 문이 한동안 닫힐 것이니 무슨 수를 써서라도 비집고 들어가야

하는 데다 촉박한 시한 때문에 과정 관리도 부실할 것이 뻔했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문제의 근원은 공공 부문이 철밥통이라는 것이다.

도대체 국민의 돈으로 유지되는 공공 부문이 민간에 비해 훨씬 선호될 이유가 무언가.

그러나 이것이 하루아침에 바뀌지 않는 이상 당장은 주어진 상황에서 원칙을 준수해야 할 뿐이다.

현재 국정조사를 주장하는 야당이 밝혀내고 싶어하는 것은 공공 기관 노조가 채용 과정에서 편법을 주도했느냐,

친(親)노조 성향의 기관장이 있거나 기세등등한 노조와의 마찰을 우려한 공공 기관들이 이를 인지하고도

방조하거나 결탁했느냐이다. 일각에서는 몇 개 수치와 사례 말고는 뚜렷한 증거도 없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그런데 이러한 의심에 기반을 제공한 것은 그간 고용 세습에 관해 노조가 보인 일관된 기득권 의식이다.

2015년 노동연구원의 단체협약 실태 조사에 의하면 30%에 달하는 기업에 직원가족의 채용 특혜를 보장하는

세습 조항이 들어 있었다.

현재 진행 중인 단체협약 조사에서도 양(兩)노총 소속 노조 중심으로 유사한 결과가 보고되고 있다.


아무리 노사 협상이라도 사회적 질서나 도덕관념에 반하는 이상 정당화되지 않는다는 게 민법 103조 공서양속원칙이다.

고용노동부는 고용 세습 조항에 대해 과거 여러 차례 시정 명령을 내린 바 있고, 법원이 관련 사건에서 단체협약 자체를

무효화한 적도 있다. 그런데도 대기업 노조들은 '고용 세습이라 욕먹어도 상관없다.

까짓 과태료 내면 그만'이라는 태도를 보여왔다.


대기업과 공공 부문 정규직으로 이루어진 힘센 그룹과 그 외 근로자 간의 차이가 심화되고 있다.

만약 노조가 힘센 쪽의 이해를 소폭 포기하고라도 전체 근로자의 이해를 조율하고 대변하는 기능을 감당한다면

근로자 대표로서의 위상과 평판을 유지할 수 있는 반면 일부 힘센 그룹의 이기심이 제어되지 않고 다른 이를

희생시킨다면 노조는 공적인 존재로 신뢰받을 수 없다.


대기업 단체협약의 고용 세습 조항과 공공 기관 노조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이미 이들을 기득권 집단 이상도 이하도 아닌

존재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평판과 신뢰를 포기하고서라도 기득권을 지키겠다는 것은 전적으로

노조의 결정이며, 위법 사항이 있을 경우 처벌받으면 될 일이다.

그러나 그 결정에 걸맞은 대접을 하는 것은 국가적으로 중요한 결정이다.


우선 정부는 제기된 의혹들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누울 자리를 보고 발을 뻗었을 것이라는 세간의 의혹을 불식시켜야 한다. 또한 장기적으로도 중요한 숙제를 안았다.

현재 최저임금, 국민연금 개혁 등 많은 국가적 이슈는 민노총과 한노총을 당연직으로 보장하는 거버넌스 구조 속에서

논의된다. 노조가 전체 근로자를 대변할 뿐 아니라 국가적 시각에서 불편부당하게 사안을 의논할 정책 파트너의

자세를 갖추었다고 추정하는 것이 이런 대접의 근거다.


그러나 근래 이들이 보여준 행태, 이에 대한 사회적 시선은 이미 이러한 대접과 심각하게 괴리되고 있다.

일개 이해단체라면 그 의견을 따로 청취하고 참조할 일이지 국가 대계를 의논하는 최상위 기구에 주빈(主賓)으로

모실 이유가 없다. 이기적인 이해 그룹 모두 국민의 일부로 존중받아야 하지만, 다른 이보다 우선시될 이유도 없다.

이들과의 협력이 아무리 여러모로 편리해도 정부는 목소리 작은 약자와 더 가까워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