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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도의 무비 識道樂] [103] Live for today

바람아님 2019. 1. 12. 11:01

(조선일보 2019.01.12 이미도 외화 번역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두 날은 태어난 날과 태어난 이유를 깨닫는 날이다(The two most important days in your life are

the day you are born and the day you find out why).' 대문호 마크 트웨인의 글귀입니다. '베일리 어게인(A Dog's Purpose·

사진)'은 베일리가 존재론적 질문을 통해 자신이 누구며 왜 태어났는지 깨닫는 이야기입니다.


영화 '베일리 어게인'


주인공이 어떤 캐릭터인지 소개하기 위해 조지 고든 바이런의 시(詩)를 일부 인용해봅니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나 허영심은 없었고,/ 힘을 가졌으나 오만하지 않았고,/

용기를 가졌으나 잔인하지 않았고,/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추었으나 악덕(惡德)은 없었다.'

여기서 '그'는 인간이 아닙니다. 시인이 사랑했던 개입니다.

작품 제목은 '어느 개에게 바치는 비문(Epitaph to a Dog)'.


애완견 베일리는 네 번 환생(還生)합니다.

50여 년 동안 그는 허영심 많고 오만한 인간들의 악덕에 맞서 주인들을 지켜냅니다.

불타는 집에서 사람들을 구조할 때나 유괴된 소녀를 구할 땐 목숨까지 겁니다.

이별의 슬픔에 젖어 홀로 살아가는 옛 주인과 그의 40여년 전 첫사랑이 다시 맺어지게끔 힘쓰기도 합니다.


우리는 반려견을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man's best friend)'라고 일컫곤 하지요. 베일리도 그런 친구입니다.

의인화(擬人化)한 캐릭터이기에 태어난 이유에 대한 그의 깨달음은 곧 인간의 지혜이기도 해 저는 이렇게 변주해봅니다.

'인간의 가장 좋은 친구는 지혜다(Wisdom is man's best friend).'


베일리의 대단원 독백은 그 스스로 가슴에 새기는 다짐의 말입니다.

'재미있게 살자. 지나간 일들에 사로잡혀 슬퍼하지 말자.

어려움에 처한 이를 돕자. 일생을 함께할 짝을 찾자'.

'어느 개에게 바치는 찬가(讚歌)'인 이 영화가 끝 부분에서 우리에게 주는 지혜의 선물은 이것입니다.

'인생은 짧다. 최선을 다해 매 순간 소중하게 살자(Live for today).'
 









[최영미와 함께 읽는 세계의 명시] 어느 개에게 바치는 비문


(서울신문 2016-09-01)

  

이 근처에
어떤 이의 유해가 묻혔다
그는 아름다움을 가졌으나 허영심은 없었고,
힘을 가졌으나 오만하지 않았고,
용기를 가졌으나 잔인하지 않았고,
인간의 모든 미덕을 갖추었으나 악덕은 없었다.

이런 칭찬이, 인간의 유해 위에 새겨진다면

무의미한 아부가 되겠지만,
1803년 5월에 뉴펀들랜드에서 태어나
1808년 뉴스테드에서 죽은 개, 보츠웨인을 추모하기 위해서라면
당연한 찬사이리라.

Near this Spot
are deposited the Remains of one
who possessed Beauty without Vanity,
Strength without Insolence,
Courage without Ferocity,
and all the virtues of Man without his Vices.

This praise, which would be unmeaning Flattery
if inscribed over human Ashes,
is but a just tribute to the Memory of
Boatswain, a Dog
who was born in Newfoundland May 1803
and died at Newstead Nov. 18th, 1808
……(후략)


최영미 시인▲ 최영미 시인


   자신이 사랑하던 개가 죽었을 때 스무 살의 바이런이 바친 추모의 글이다.

광견병에 걸린 애견을 바이런은 혹시 모를 전염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극정성으로

간호했다 한다. 바이런 가문의 사유지였던 뉴스테드 교회에 가면

‘어느 개에게 바치는 비문’(Epitaph to a Dog)이 새겨진 무덤이 있는데,

개의 무덤이 주인이었던 시인의 무덤보다 크단다.


바이런이 사망한 뒤에 그의 친구인 홉하우스가 ‘어느 개에게 바치는 비문’의 도입부를

자신이 썼다고 주장하는 편지를 남겼는데 진위 여부는 알 수 없다. 시에 밴 풍자, 마치 칼로 찌르는 듯 간결한 위트에서

바이런의 숨결이 느껴지는데, 두 친구가 같이 보츠웨인을 매장하며 추모시를 합작했는지도 모르겠다.


동물을 사랑해 무덤을 만들고 비문까지 새겨 넣은 사람이 자신의 친딸에겐 어쩜 그리 냉담했는지.

밀방크와 결혼해 딸을 낳은 뒤 이혼하고 영국을 떠난 바이런은 이탈리아로 망명해 다시 고국에 돌아오지 않았고,

생후 1개월 만에 아버지와 헤어진 딸 에이다는 살아서 바이런의 얼굴을 다시 보지 못했다.

제네바에서 만난 클레어를 임신시켜 낳은 딸 알레그라는 아버지와 지내다 이탈리아의 수도원에 맡겨져

다섯 살에 어머니도 아버지도 곁에 없이 병을 앓다 죽었다.

  


  자신이 아버지 없이 자라서 그랬던가. 바이런은 1788년 런던에서 몰락한 스코틀랜드 귀족의 피가 흐르는 어머니와

‘미친 잭’이라는 별명을 가진 아버지 밑에서 태어났다. 방탕했던 아버지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다 바이런이 세 살 때,

서른여섯의 나이에 프랑스에서 죽었다. 바이런도 그의 아버지와 같은 나이에 그리스에서 죽었고,

바이런의 딸 에이다도 서른여섯 살에 암으로 사망했다.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바이런의 유년기는 그리 풍족하지 않았다.

어머니 캐서린은 한없이 부드럽다가도 금방 난폭해지고, 예민하며 불안정한 정서를 아들에게 물려주었다.

삼촌이 죽으며 상당한 영지와 ‘남작’ 직위를 상속받은 바이런은 해로 고등학교와 케임브리지를 다니며

자유분방한 생활을 즐겼다.


학교를 마친 뒤 바이런은 유럽여행을 떠난다. 친구 홉하우스와 함께, 그리고 하인이 셋이나 동행한 모험이었다.

포르투갈, 스페인을 거쳐 그리스, 터키 등 지중해와 근동을 순례하며 바이런은 시를 썼다.


2년여에 걸친 여행을 마치고 영국으로 돌아온 바이런을 하루아침에 유명인사로 만든 시집이 ‘차일드 해럴드의 순례’

(Childe Harold’s Pilgrimage)이다. 8절판에 찍은 3000부가 시장에 나온 지 이틀 만에 다 팔렸다.

바이런 자신도 “어느 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유명해졌더라”(I awoke one morning and found myself famous)라고

말할 만큼 폭발적인 인기였다. 전례 없는 인기의 원인은 무엇일까.

바이런 특유의 위트로 풀어낸 ‘세상에 대한 권태’와 우울한 분위기가 아니었는지. 몇십 년 지속된 프랑스혁명에서

비롯된 피로감, 타락한 정치와 종교에 대한 환멸을 바이런처럼 재치 넘치는 언어로 표현한 시인은 없었다.

  
나는 바이런을 졸업했지만 입시와 취업에 매몰된 우리 아이들에게 바이런을 알리고 싶다.

이렇게 살다 간 젊음도 있었다고. 그리스 독립군에 거금을 빌려주고 자비로 군대와 군수물자를 동원해

1개 여단을 훈련시킨 그는, 싸우기도 전에 전쟁터에서 병으로 숨졌다.


‘반대’를 위해 태어난 시인. 인간을 억압하는 모든 압제에 반대하며, 독재와 관습과 위선에 맞서 싸운 바이런의 삶은

헛되지 않았다. 그의 갑작스러운 죽음은 유럽에 그리스 문제를 환기시키는 계기가 돼 1827년 영국과 프랑스와

러시아가 파견한 군함들이 터키 함대를 파괴했고, 몇 년 뒤에 터키에서 독립한 그리스 국가가 탄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