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시론>살길 찾아 떠나는 경제 망명자들/['제화 메카' 성수동의 눈물] 공임 오르자 해외로 짐싸.."중국산 구두 국내 점령 시간문제"

바람아님 2019. 1. 17. 08:39

<시론>살길 찾아 떠나는 경제 망명자들


문화일보 2019.01.16. 14:20



꿈 펼치려고 조국 등지는 현실
첩첩 규제와 反시장 정책 피해
기존 산업도 신산업도 脫한국

투자·두뇌·일자리 다 떠나는
나라에 미래 희망 있을 수 없어
기업하고 싶은 산업정책 펴야


8∼11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 2019’는 모든 미래 기술의 향연이 펼쳐진 무대였다. 세계를 휘어잡는 글로벌 기업부터 못 가본 길에 겁 없이 도전하는 스타트업에 이르기까지 신산업의 신세계를 열어 보였다. 다양한 현지보도 가운데 유난히 시선이 간 것은 한국인이 꾸렸으되 한국 대표는 아닌 기업들이다.


뇌졸중 등으로 거동이 어려운 사람이 재활 운동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의사의 원격 처방으로 교정받는 제품을 전시한 업체는 한국인 스타트업이다. 그러나 국내에선 원격의료에 해당하는 불법으로 가정용 판매가 안 된다. 결국 미국에 법인을 세우고 CES에 참가했다. 국내 최초로 도심 주행 자율주행차를 만들었던 다른 스타트업은 도로교통법·자동차관리법 등 첩첩 규제에 좌절하고 미 실리콘밸리로 건너가 창업했다. 블록체인 기술로 CES에 명함을 내민 또 다른 스타트업 역시 규제가 덜한 동남아 쪽에 법인을 세울 계획이라고 한다. 모두가 경제적 핍박을 견디지 못하고 조국을 등진 ‘망명자’들이다.


언제부턴가 외국에 나가야 사업의 꿈을 펼칠 수 있는 나라가 돼버렸다. 일명 ‘당뇨폰’은 2004년 벤처기업이 휴대전화 업체와 손잡고 출시한 모델이지만, 바로 생산이 중단됐다. 혈당 체크 기능 탓에 의료기기로 분류됐기 때문이다. 해외에선 잘 팔리는데, 국내엔 15년이 되도록 발도 못 붙이고 있다. 당뇨를 스마트기기 등으로 사전에 관리하면 4조 원 넘게 의료비가 절감된다는 연구도 있다. 2015년 심전도 측정 기능의 스마트워치를 개발하고도 승인을 기다리다 애플에 선수를 뺏긴 사례는 그 판박이다. 한국은 5세대 통신서비스인 5G에서 ‘최초’ 타이틀을 얻었지만, 실속은 없다. 5G는 인공지능(AI), 자율주행차, 원격의료 등과 연계될 때 빛을 발하지만, 국내에선 규제장벽에 막혀 꼼짝 못 한다. SK텔레콤이 굳이 중국으로 가 모바일 헬스케어 사업을 벌이는 이유다. 중국 화웨이는 5G 기술을 활용한 원격수술 솔루션을 개발해 서비스하는 단계까지 갔다.


2017년 기준 해외 신규법인 설립 사례는 3411건이다. 투자액도 해외기업의 국내 진출보다 2배 정도 많은 투자 역조다. 일자리도 43만여 개가 빠져나갔다. 유턴하겠다는 기업은 찾아보기 힘들다. 탈(脫)한국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주로 싼 인건비에 매력을 느낀 기존 제조·서비스업체들의 선택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차량공유, 헬스케어, 핀테크, 바이오 등 신산업 분야의 거의 모든 영역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는 일이다.


기업이 나가면 인재도 떠난다. AI는 4차산업 혁명기에 승부를 좌우하는 핵심 기술인데, 특급 인재들은 거의 다 해외로만 간다. 2022년까지 국내 AI 연구인력이 7000명 부족할 거란 보고서도 나왔다. AI는 데이터를 활용하는 경험이 쌓일수록 기술력이 상승하는데,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데이터 규제 속에선 어찌해볼 도리가 없다. 반면 알리바바·바이두 등 중국 업체들은 세계의 AI 인재들을 블랙홀처럼 빨아들이고 있다. 중국 AI 인력은 한국의 7배, AI 기업 수는 40배에 이른다. 당장 2, 3년만 지나면 어떤 결과로 이어질지 식은땀이 난다.


기업도, 자본도, 인재도, 일자리도 빠져나가는 나라에 희망이 있을 리 없다. 코리아 엑소더스를 막는 일이 무엇보다 시급할 텐데, 문재인 정부의 행보는 역주행, 혹은 갈지자다. 최저임금 과속을 보완한다더니, 시행령 개정으로 더 가속페달을 밟았다. 기업 기 살린다며 경영권을 위협하는 상법·공정거래법을 밀어붙인다. 협력이익공유제, 산업안전보건법 등 기업가를 궁지로 모는 규제 추가에 여념이 없다. 노조 리스크는 커져만 간다. ‘혁신성장’ 말만 앞세울 뿐, 가시적 성과는 전무하다시피 하다. 이래서는 한국을 떠나는 경제 망명자만 더 늘어날 뿐이다.


문 대통령은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이 있다”며 주무 부처를 나무랐다. 하지만 산업정책이 거창할 건 없다. 어느 중견기업이 호소했듯 “기업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수 있도록” 해주면 되는 것이다. 내일부터 규제 샌드박스를 시행한다지만, 승차공유·원격의료·빅데이터 등 골치 아픈 문제는 뒤로 제쳐놨다. 그러니 산업정책은 시민단체가 짠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이다. 외국기업 단체도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라고 공개 비판한 터다. 새 비즈니스 모델엔 5년 후에야 규제를 도입하는 중국만큼은 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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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화 메카' 성수동의 눈물] 공임 오르자 해외로 짐싸.."중국산 구두 국내 점령 시간문제"

서울경제 2019.01.16. 17:43

 

브랜드업체 값싼 인력 찾아 이전
하청 공장 매출 최대 70% 줄어
인건비에 원부자재도 올라 이중고
연내 4대보험·퇴직금 보장 추가땐
10곳 중 9곳은 살아남지 못할 것
서울 성수동 내 한 부분 공정 업체에서 제화공이 신발을 재봉하고 있다./변수연기자
   #“이 사람들 다 제화공이에요. 그런데 오전에만 일하고 오후에는 할 일이 없어 앉아서 TV 보고, 커피를 마시는 거예요.” “1월이 성수동 비수기는 맞아요. 그래도 지난해 이맘때에는 봄여름 시즌 물량 주문이 몰리면 아침 8시부터 밤 8~10시까지 일하는 날도 있었다고요. 지금은 일이 없어서 일주일에 3일 일하고 4일 노는 공장이 수두룩합니다.” 16일 오후3시께 찾은 서울 성동구 성수동의 제화공장이 몰린 거리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한창 일할 시간인데도 공장은 주인이 불만 켜놓고 자리를 비웠거나 일찍이 문을 닫은 곳이 대부분이었다. 사람이 북적거리는 곳을 찾아가봐도 일이 없어 쉬는 제화공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을 뿐이었다.

국내 제화산업의 본산인 성수동이 멈췄다.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제화 공임이 지난해 초 15~20% 인상되며 대형 구두 브랜드들이 국내 생산량을 크게 줄이자 일주일에 절반은 공장을 놀리거나 아니면 아예 폐업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불경기에 공임까지 오르니 브랜드 업체 줄줄이 떠나=기자가 이날 만난 성수동 내 크고 작은 완제 업체 또는 부분공정 업체의 대표는 제화 공임 인상 이후 매출이 적게는 절반에서 70% 가까이 줄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들은 제화 공임 인상이 시장 상황에 맞지 않게 급격하게 이뤄졌다고 지적했다. 패션 시장 전반의 침체로 브랜드 업체들이 주문량을 줄이는 상황에서 인건비 부담과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이 벌어지며 생산 불안을 높이니 브랜드 업체가 국내 생산량을 줄이고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는 것. 생산량이 줄어들자 ‘미소페’의 하청공장 중 하나인 ‘쏠레’가 지난해 10월 문을 닫은 것을 시작으로 업체들의 ‘성수동 엑소더스’가 이어지고 있다. 미소페의 하청공장 중 하나는 중국으로 공장 이전을 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대형 패션업체의 신발을 만드는 한 완제 업체 대표인 홍성호(가명)씨는 “지난해 대목인 추석을 앞두고 공장을 풀가동해야 하는 여름에 공장에서 일하던 제화공들이 한꺼번에 예고도 하지 않고 2주 넘게 파업을 벌이는 바람에 납기일을 못 맞춰 손해가 막심했다”고 토로했다.

이후 그와 계약한 브랜드 업체는 생산량을 줄였다. 홍씨는 “월 4,000족은 생산해야 수익이 나는데 현재 그 절반인 월 2,000족만 생산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여기에 최저임금 인상에 따라 원부자재 값도 상승했다. 그럼에도 지난해 인건비 비중은 처음으로 원부자재 값 비중을 넘겼다.


◇생산 불안 부른 파업 “30~40년 일한 동료가 이렇게 나올 줄은···”=성수동에서 파업은 흔한 일이 아니었다. 지난해 4월 대형 제화 업체인 ‘탠디’의 하청업체 소속 제화기술자들이 ‘민주노총 제화지부’를 결성해 공임 인상과 퇴직금을 요구하는 파업을 벌인 게 단초가 됐다.

성수동의 공장 대부분에서 일하는 제화공들은 ‘객공(客工)’이라고 불린다. 봉제공장 업계에서 근로자와 구별하기 위해 불러오던 관행으로 근로자의 지위를 갖지 않기 때문에 4대보험 가입, 퇴직금 등이 제공되지 않아 왔다.


같은 해 5월 탠디와 극적으로 타결했지만 민주노총 제화지부는 성수동 전역에서 집회를 열고 다른 하청공장의 노동자들을 가입자로 받으며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는 공장에서는 비정기 파업을 벌였다. 이렇게 공임 인상 이슈는 지난해 성수동 전체로 퍼졌다.

홍씨는 “30년을 알고 지낸 제화공들에게 납기일을 맞춰달라고 사정해도 파업을 이어갔다”며 “우리 부부는 월 400만원을 버는데 월 300만~500만원을 받는 제화공들에게 4대보험·퇴직금까지 지급하려면 연 수억원의 추가 비용이 든다”고 말했다. 그가 알고 지내던 공장주 가운데 최근 폐업을 했거나 폐업을 위해 생산을 중단한 곳만 3군데다.


◇대형사 이어 영세업체도 폐업 도미노···값싼 중국산 점령 시간문제=홍씨의 사례처럼 근로자가 15~20명 정도 규모의 완제 업체는 그래도 성수동에서 큰 규모에 속한다. 완제 업체로부터 재하청을 받는 부분공정 업체는 2~3명이 일하는 곳들도 많다. 완제 업체들이 휘청이자 그 여파는 고스란히 소규모 공장에까지 퍼지고 있다. 현재 성수동에 매물로 나온 공장들만 50군데가 넘는다.

신발 아웃솔과 갑피를 재봉하는 단계(아리안스)를 담당하는 업체의 이현필 대표는 “성수동 내에 우리 같은 업체가 6군데 있는데 연내로 2곳이 문을 닫겠다고 했다”고 전했다.


제화 업계는 연내에 있을 추가 인건비 부담 증가를 우려하고 있다. 지난 1일부로 최저임금이 한번에 10.9%라는 큰 폭으로 오르면서 이에 따른 공임 추가 인상에 민주노총 제화지부가 주장하는 퇴직금·4대보험 보장까지 연내 이뤄지면 성수동 내 90% 이상은 살아남지 못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대형 브랜드 업체의 한 관계자는 “국내 브랜드 가운데 국내 생산량 비중이 20%대로 주저앉은 곳도 있다”며 “이대로 성수동 엑소더스가 가속화되면 그 자리는 값싼 중국·동남아산이 대체해 대한민국 제화산업의 근간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변수연기자 dive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