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기 유급 휴가, 곧 바캉스(vacance)는 1930년대 후반 프랑스에서 꽤나 비장한 분위기에서 제도화되었다. 유럽 각국에서 파시즘의 위협이 날로 거세지던 당시, 프랑스에서는 노동자와 농민, 지식인 등이 극우 세력의 준동에 대항하여 민주주의를 옹호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동안 대립을 이어오던 사회당과 공산당이 제휴했고, 노동총동맹과 공산당계의 통일노동총동맹의 양대 노조까지 통합한 데다가, 각종 좌파 단체들, 그리고 중산층이 지지하는 정당까지 가담하여 모두 100개 가까운 단체들의 연합체가 형성되었다. 이를 '인민연합'이라 부른다. 1936년 6월, 총선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한 반(反)파시즘 세력은 사회당의 레옹 블룸을 수반으로 하는 인민전선 내각을 발족시켰다.
이런 흐름을 타고 6월 7일, 정부와 노동자 및 고용주 측이 마티뇽 합의에 서명하였다. 프랑스 노동계의 마그나 카르타(대헌장)라고 불리는 이 합의문에 따라 여러 개혁 법안들이 만들어졌다. 그중에는 임금 인상, 노동시간 주 40시간 단축 같은 사항 외에도 연간 2주의 유급휴가가 포함되어 있었다. 바캉스가 본격적으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그 이전에도 바닷가에 휴양지들이 있었지만 이는 귀족이나 중산층만 이용할 수 있었다. 사회당 인사로서 인민전선 정부에서 스포츠와 레저를 담당했던 라그랑주는 서민들의 바캉스 계획을 돕기 위해 50만건의 할인 열차 여행과 호텔 서비스를 제공했다. 그러고 보면 바캉스는 나치즘과 파시즘에 저항하여 인간의 기본 권리를 지킨다는 중대한 국가 정책으로 탄생한 것이다.
그 후 프랑스에서 유급휴가는 1950년대에 3주, 1960년대에는 4주로 늘었고, 다시 미테랑 대통령 때 5주로 늘어났다. 이제 여름철이 되면 프랑스의 전 국민은 쥐이예티스트(juillettiste, 7월에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와 아우시엥(8월에 바캉스를 떠나는 사람) 두 종류로 나뉜다. 바캉스 비용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은 자신의 자동차를 팔아 그 돈으로 버스를 타고 놀러 갈 정도로 철저하게 잘 논다.
우리의 바캉스는 교통지옥과 바가지 가격, 개미떼 같은 인파에 시달려 오히려 몸과 마음이 더 피곤해지기 십상이다. 바캉스를 한가한 개인 문제로 치부할 것이 아니라 국가의 주요 정책 중 하나로 생각하고 품격 있는 바캉스를 만들 대책이 필요하다.
(출처-조선일보 2011.08.05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근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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