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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90] 생태 복지

바람아님 2013. 12. 5. 20:00

(출처-조선일보 2010.12.20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여야를 막론하고 대권 예비주자들의 마음에 복지가 중요한 의제로 자리를 잡은 듯싶다. 그동안 우리는 복지를 그저 가난한 이웃에게 철 맞춰 연탄이나 넣어드리고 아플 때 병원비 좀 보태드리는 것쯤으로 생각해왔다. 이는 일이 다 벌어지고 난 다음 적당히 뒷마무리를 하는 이른바 '후대응 복지(reactive welfare)'의 전형이다. 하지만 이제 복지의 개념이 바뀌고 있다. 선진국들은 이미 모두가 풍요롭게 살 수 있도록 건전한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고, 보다 건강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깨끗한 생태환경을 만들어주는 '선대응 복지(proactive welfare)'에 투자하고 있다.

길게 보면 선대응 복지가 후대응 복지보다 훨씬 경제적이다. 자연환경을 보전하여 수질과 대기질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비용은 환경오염으로 인해 발생하는 끝도 모를 의료비용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다. 그래서 유엔은 2001년부터 세계 95개국의 생태학자 1360명을 동원하여 '밀레니엄 생태계 평가(Millenium Ecosystem Assessment)' 사업을 시작했다. 이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 '국가들의 웰빙(The Well-being of Nations)' 프로젝트에서는 전 세계 180개국을 대상으로 전통적인 의미의 '인간 복지'와 더불어 '생태계 복지'를 평가하여 순위를 매겼다.

이 평가에서 우리나라는 인간 복지 부문에서는 28위로 매김되어 어느 정도 체면을 유지했지만 생태계 복지 부문에서는 180개국 중에서 162위라는 치욕적인 불명예를 얻었다. 우리 밑에 깔려 있는 여남은 나라들은 솔직히 나라 꼬락서니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나라들이다. G20 국가 중에 우리처럼 열악한 생태복지국가는 없다.

반도체나 자동차는 어떤 공장에서 만들었는지 묻지 않는다. 성능만 좋으면 산다. 우리 정부의 녹색성장 비전은 분명히 탁월한 선택이었지만 녹색기술은 이미지 기술임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 강산과 삶 자체가 녹색이 되어야 우리의 녹색기술이 세계를 감동시킬 수 있다. 녹색 후진국이 어쭙잖은 녹색기술을 선보이면 몇 년 전 유행했던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명대사를 듣지 않을까 두렵다. "너나 잘하세요." 너나 잘해서 생태계 복지 162위에서 20위 정도로 끌어올린 다음에 팔아먹으라고.




(각주)

1.인간복지(人間福祉, human welfare, 人類福祉)- 인간 대중을 대상으로 절대적 및 상대적 빈곤과 저소득에 있는 자와 그의 가족,

  사고 때문에 생활을 영위하기 어려운 자를 대상으로 공중위생 교육, 주택정책 등에 걸치는 광범위한 제 시책을 포함하는 포괄개념.


2.생태복지(ecowelfare)란 ‘생태적인 복지’를 뜻합니다. 그 뜻을 좀 더 풀어서 말하자면, 생태복지는 ‘생태계와 조화를 이루는 

  복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생태복지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생태계에 대해 이해해야 합니다. 생태계는 생물과 비생물이

  어우러져 이루는 체계인데요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하나의 생태계입니다.

 

  인간은 이 생태계와 무관하거나 그 바깥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 생태계를 이루는 하나의 요소일 뿐입니다. 따라서 생태계의

  파괴는 결국 인간의 파괴로 귀결된다는 것이죠. 결국 생태계를 지키는 것이 바로 우리를 지키는 것이란 말입니다. 

  따라서 생태계가 제대로 유지되지 않는다면 복지는 아예 생각할 수도 없게 됩니다. 생태복지는 여기서 비롯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