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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의 자연과 문화 [92] 희망을 말하는 동물

바람아님 2013. 12. 8. 10:29

(출처-조선일보 2011.01.04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행동생태학)


꼭 1년 전 이맘때 세계적인 침팬지 연구가 제인 구달 선생님이 이메일 연하장에 '네 개의 촛불'이라는 파워포인트 자료를 첨부하여 보내주셨다. 제일 먼저 평화(peace)의 촛불이 이제 아무도 자기를 지켜주지 않는다며 힘없이 스러지고, 믿음(faith)의 촛불도 더 이상 사람들이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다며 쓸쓸히 사라지더니, 드디어 사랑(love)의 촛불마저 꺼져버린 방에 어린 아이가 들어온다. 언제까지나 함께 타기로 했던 네 개의 촛불 중 이미 세 개가 꺼져버린 걸 보고 눈물을 흘리는 아이에게 마지막 촛불이 이렇게 말한다. "걱정하지 마라. 내가 타고 있는 한 우리는 언제든 다른 촛불에 새롭게 불을 밝힐 수 있단다. 나는 희망(hope)의 촛불이니까."

동물행동학을 전공하는 나에게는 치기 어린, 그러나 나름 퍽 진지한 꿈이 있다. 언젠가는 동물들의 마음속을 들여다보리라 꿈꾸며 산다. 인간이 아닌 다른 동물들의 세계에도 분명 평화와 사랑이 존재하며 때론 믿음에 기반을 두지 않고는 도저히 일어날 수 없을 행동도 관찰된다. 그러나 그들은 우리처럼 희망을 말하지 못한다. 지난여름 지하 600여m의 갱도에 매몰되었다가 69일 만에 구출된 칠레 광부들 이야기에서도 보듯이, 칠흑 같은 절망 속에서도 인간이라는 동물은 희망을 얘기한다. 그리고 희망은 무모할수록 더욱 고도의 인지능력을 필요로 한다.

나는 대학을 졸업한 후 1년간, 지금은 고층 아파트들이 들어선 경기도 평촌 지역 어느 야학에서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채 방직공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가르쳤다. 어느 날 교장선생님께서 내게 내가 담임을 맡은 학급의 급훈을 만들어보라고 하셨다. 나는 생각 끝에 다음 세 마디를 학생들에게 쥐여주었다. "보다 긍정적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보다 낙천적으로." 당시 그들이 처한 상황에 비춰보면 사실 말도 안 되는 주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매년 이맘때면 그때 내게 배운, 그러나 어느덧 같이 늙어가는 옛 제자들로부터 연하장을 받는다. 온갖 어려움을 헤치고 제법 버젓한 가정을 꾸리고 사는 아줌마들이 들려주는 희망의 이야기를 읽는다. 희망은 우리 인간만의 특권이다. 절망의 2010년을 보내며 상처받은 모든 생명에게 영원히 꺼지지 않을 희망의 촛불을 밝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