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서소문사진관] 사진가 김희중(에드워드 김) 전 상명대 교수 별세

바람아님 2019. 3. 14. 08:29
중앙일보 2019.03.13. 18:10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사진가 김희중(1940~2019) 전 상명대 석좌교수가 10일 별세했다. 향년 79세. 김 교수의 빈소는 경기도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됐다. 고인의 뜻에 따라 부고는 내지 않고 친지와 지인들에게만 알렸다.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고인의 빈소는 사진가로서의 삶을 돌아볼 수 있도록 꾸몄다. Good Bye My Life라는 제목으로 편집한 사진들은 고인의 성장 과정을 보여주는 사진들로부터 취재 활동, 대표작까지 두루 포함한다.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빈소 내부는 고인의 성장 과정부터 취재 활동을 하는 모습까지 흑백사진을 전시했다.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중고교시절부터 대학 시절까지.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젊은 시절.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카메라를 들고 온 세상을 누비던 시절의 모습.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수많은 취재현장에서 고인이 목에 걸었던 비표들.
김희중
김희중은 중고교시절부터 '사진 천재'로 소문이 났다. 고교 시절인 50년대 영등포에서 시외버스를 타고 안양까지 가서 신작로를 걸으며 만난 할아버지들을 촬영했다. 고장 나서 길가에 서 있던 트럭에 올라가 기다렸다가 할아버지들이 다가왔을 때 셔터를 눌렀다.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201190313
김희중의 이력 중 가장 두드러진 것은 미국의 세계적인 잡지 '내셔널 지오그래픽'에서 일한 것이다. 1980년 10월 그는 기획위원 겸 편집팀장(Senior Editor)이 됐다. 임원급이다. 기획 회의는 제작 방향을 정하고 기획안의 승인과 진행을 총괄하는 곳으로 회사에서는 '별들의 모임'이라고 불린다. 김희중은 그중에서도 권한이 가장 광범위한 편집팀장이 되었다.

그의 빈소에 '내셔널 지오그래픽' 한권이 조문객을 맞이하고 있다. 표지사진은 1974년 가을 고인이 남태평양에서 촬영한 것이다.

김희중
김희중은 1973년 북한을 취재했다. 서방 기자로는 최초였다. 그가 직접 쓴 글과 사진은 1974년 8월호에 실렸고, 김희중은 '미국 해외기자단(Overseas Press Club) 최우수 취재상을 받았다. 퓰리처상에 버금가는 권위 있는 상이었다. 내셔널 지오그래픽 100년 역사에서 사진으로는 수차례 그 상을 받았지만, 기사로 상을 받은 것은 처음이었다.
김희중
김희중의 북한 취재 사진. 1973년 군사훈련을 받는 학생들을 위문하는 취주악대 소녀들.
김희중
김희중은 국내 기업인 삼성에서 고문으로 활동하며 삼성 사보를 제작한 적이 있다. 그 당시 브라질 코파카바나 해변에서 촬영한 삼성 마이마이 광고사진. 삼성의 기업 이미지를 생각하면 파격적인 사진이었지만 이건희 회장은 "좋은 사진"이라고 말하며 직접 채택했다. 이 사진은 1990년 가을 삼성 사보 가운데 대형 센터 폴더로 게재됐다.
사진가 고 김희중 상명대 교수의 분당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최정동 기자
빈소의 고 김희중 교수. 본인이 직접 고른 영정사진이다.
편히 쉬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