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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경화 명작 기행] 130년 前 로마 중산층 '쾌락의 정원'에서 고단한 일상을 벗다

바람아님 2014. 1. 19. 16:28
                    ● 오스발트 아셴바흐의 '보르게세 정원에서'

얼떨결에 찍은 스냅사진처럼 화면구도 중심 없고 낯 설어…佛 인상주의서 영향 받은 듯
교황 조카 보르게세 추기경, 미술작품 수집해 정원에 보관…로마 관광 명소로 자리잡아                

 

   Oswald Achenbach__Villa Borghese


그리스 조각이 진열돼 있는 루브르 박물관의 제17번 홀에 들어서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한 인체 조각상이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는다. '여체'라는 말 대신 '인체'라고 표현한 것은 이 매력적인 누드의 주인공이 남자도 여자도 아닌 자웅동체이기 때문이다.

헤르메스와 아프로디테가 결합해 낳았다는 헤르마프로디테(Hermaphrodite)라는 신은 원래 미소년이었는데 물의 정령 살마시스와 정을 통한 뒤 양성의 존재가 됐다고 한다. 그래서 그리스 시대의 조각상은 한결같이 여성의 신체에 남성의 생식기를 한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루브르 박물관에 소장된 작품은 그 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으로 여성스러운 뒤태를 드러낸 채 침대 위에 엎드린 모습으로 묘사됐다.

이 조각상은 교황 바오로 5세의 조카이며 교황청 최고 권력자인 보르게세 추기경이 별장에서 은밀히 감상하기 위해 베르니니에게 주문한 것으로 헤르마프로디테의 로마시대 복제품에 침대와 베개를 덧붙여 완성한 것이었다. 어찌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놀라긴 아직 이르다. 그는 이 작품 말고도 카라바조에게 '병든 바쿠스''꽃바구니를 든 소년'이라는 그림을 주문했는데 한눈에 남색 이미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Edgar Degas-Place de la Concorde

 

그는 이 밖에도 '사토루스와 돌고래' 같은 동성애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작품들을 잇달아 주문했다. 이쯤 되면 보르게세라는 인물이 동성애자일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점을 독자들도 눈치 챌 것이다. 실제로 그는 스테파노라는 인물을 자신의 사저에 불러들여 물의를 일으켰고 체면을 구긴 교황은 조카의 파트너를 로마에서 추방했다.

이 사태로 보르게세 추기경은 상사병에 걸려 오랫동안 침대 신세를 지는데 조카의 안위를 염려한 교황은 결국 스테파노의 로마 귀환을 허용하고 만다. 이렇게 해서 '교황 성하'는 다시 한 번 체면을 구긴다.

보르게세 추기경의 이야기 보따리는 풀면 풀수록 점입가경이다. 그는 정치적 권위를 이용해 로마 남부의 토지를 헐값에 닥치는 대로 수용하기도 했다. 외삼촌인 교황이 살아있을 때 문중의 위세를 한껏 높여놓을 심산이었다. 토지를 반강제로 빼앗긴 지주들은 변변히 저항도 못한 채 치를 떨었다. 보르게세는 성직자로서 해서는 안 될 짓을 두루두루 자행했던 인물이다.

수많은 스캔들에도 불구하고 보르게세가 공헌한 부분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그는 자신이 긁어모은 재산의 상당 부분을 예술 후원에 썼다. 바로크 예술의 거장 치고 그의 가호를 입지 않은 사람은 드물었다. 베르니니가 보로미니를 제치고 당대 최고의 건축가이자 조각가로 기반을 다지게 된 막후에는 보르게세가 있었고 망나니 같은 행각을 벌였던 거장 카라바조도 그의 덕을 톡톡히 봤다.

그의 수집벽은 당대 작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티치아노의 '신성한 사랑과 세속의 사랑',프라 안젤리코의 '최후의 심판' 같은 명품들도 그는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직성이 풀렸다. 이렇게 해서 수집한 소장품들은 가문의 성을 딴 보르게세 정원과 부속 건물에 보관했다. 덕분에 그의 정원은 사후 400여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로마 방문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가 됐다.

뒤셀도르프 출신의 풍경화가 오스발트 아셴바흐도 1882년 가을 이 매력적인 쾌락의 정원을 찾았다. 그는 독일 내에서 이탈리아 풍경화 전문화가로 명성이 자자했다. 그의 풍경화는 보는 이로 하여금 여행의 충동을 불러 일으켰기 때문에 인기가 높았다.

'보르게세 정원에서'는 1882년의 스케치를 바탕으로 4년 뒤에 완성한 작품.그가 일반적으로 그린 풍경화들과는 다른 독특한 구도로 눈길을 끈다. 화면의 중심은 싱겁게도 짙은 갈색의 아름드리 나무가 차지하고 있어 낯설다. 게다가 건물은 파사드의 오른쪽 끝 부분만을 드러낸 채 절단돼 있고 앞부분의 일부 행락객 역시 신체가 무심하게 잘려 있다. 마치 얼떨결에 찍힌 스냅사진처럼 중심이 결여돼 있다.

이 점은 화가가 이런 방식의 구성을 즐겼던 에드가 드가 같은 프랑스 인상주의자에게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암시한다. (작은 그림 참조) 물론 당시 대중화되고 있었던 사진술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림에서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등장인물들의 옷차림이다. 그들은 전통의상 대신 현대적인 신사복과 양장으로 단장하고 있다. 이 점은 산업혁명 이후의 두터운 중산층 형성과 도시민의 레저 활동이라는 시대 흐름을 로마도 피해갈 수는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다.

이 새로운 도시민들에게 보르게세 정원과 건물 곳곳을 장식하고 있는 '호모 에로틱' 이미지들은 팍팍한 도시생활의 고단함을 잊고 잠시나마 낭만적인 환상에 젖어들 수 있는 탈출구 역할을 해주고 있다. 그러고 보면 보르게세 추기경에게 꼭 돌을 던질 일은 아니다. 적어도 보르게세의 후예들에게 있어서는 말이다.

정석범 < 미술사학 박사 >

 

 

[한경기사 바로가기]

 

 

[기행문에 열거된 다른 화가들의 그림추가-단양]

 

내용을 좀더 이해하기 위해 그림을 추가합니다.

'사토루스와 돌고래'는 그림을 찾지 못했지요.

 

  Giovanni Lorenzo Bernini-Hermaphrodite -01

 

  Giovanni Lorenzo Bernini-Hermaphrodite -02

 

  Giovanni Lorenzo Bernini-Hermaphrodite -03

 

 

                 Caravaggio-Sick Bacchus

 

 

    Caravaggio-The Boy with Basket of Fruit

 

 

   Tiziano Vecellio-Sacred and Profane Love

 

 

    Fra Angelico - The Last Judgement

 

 

    Fra Angelico - The Last Judgement - Part 1(예수 천사등의 심판진 모습)

 

    Fra Angelico - The Last Judgement - Part 2(천당)

 

 

   Fra Angelico - The Last Judgement - Part 3(지옥)

 

 

                                     Fra Angelico - The Last Judgement - Part 4(지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