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2.06 김철중 논설위원·의학전문기자)
2005년, 의학의 신(神) 문양이 들어간 'WHO(세계보건기구) 깃발'이 펄럭이는 차량이 조선일보사 건물로 들어왔다.
차에서 내린 이종욱 WHO 사무총장은 조류인플루엔자가 발생한 동남아를 막 순방하고 온 방역 사령관 모습이었다.
그는 각국 언론에서 "WHO가 신종 전염병 위험을 지나치게 과장해 공포에 몰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었다.
이에 굴하지 않고 감염병 확산 시 국제 공조로 퇴치하는 세계보건규칙을 만들었다.
우한 사태가 그 규칙에 따른 6번째 비상사태 선포다.
▶2015년 6월 우리나라서 메르스가 막 퍼지던 시기, WHO에서 조사단이 날아왔다.
WHO는 대규모 감염병이 발생하면 조사단을 해당 국가에 보내 통제할 수 있는지 평가한다.
그들은 마치 방역 사찰관 같았다.
한국의 정보 공개가 늦어져 각 나라가 상황에 제때 대처하지 못하고 있다는 식의 '질책'도 있었다.
그런 WHO가 우한서 신종 코로나가 대거 발생하던 시기에 중국 현지 조사를 안 했다.
▶거브러여수스 현 WHO 사무총장은 연일 중국 두둔하기 바쁘다.
그는 5일 "중국의 조치로 우한 폐렴 해외 확산을 막을 기회의 창을 갖게 됐다"며 "이 기회의 창을 놓치지 말자"고 했다.
"중국에 대한 이동 제한을 하는 나라가 늘어나면 공포가 늘어난다"며 여행과 교역 제한 조치를 반대한다.
질병과 싸우는 국제기구 수장이 아니라 마치 중국 정부 '대변인' 같은 모습이다.
▶거브러여수스 사무총장은 아프리카 북쪽 빈국 에리트레아 출신이다.
자국 대학에서 생명과학을 전공하고 영국에서 감염병 관련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이웃 에티오피아 보건부를 맡으면서 에이즈를 22%, 뇌수막염을 68% 줄이며 능력을 인정받았다.
보건 전문가라기보다 의료 사업 관련 기금과 원조를 크게 늘린 외교 전문가에 가깝다.
그는 아프리카 대륙에 수조 원을 투자하겠다는 중국 정부 지원에 힘입어 2017년 아프리카 출신 첫 사무총장이 됐다.
▶요즘 WHO 위상이 예전만 못하다는 얘기가 국제 의료계에서 나온다.
미국이 예산 지원을 대폭 줄이고, 국가 대(對) 국가 직접투자 방식의 의료 사업에 집중하면서 재정난이 심화됐다.
WHO 직원의 80%는 일이 생길 때마다 채워지는 비정규직이다. 메르스 담당자도 한 명이다.
전염병 정보는 미국 질병관리센터에 의존한다.
상당수가 현장서 역학조사 한번 안 해본 '회의 전문가'라는 비판도 나온다.
어디서건 의료와 방역이 정치에 휘둘리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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