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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朴 대통령 연설장 찾은 日의 '이른바 평화주의자'

바람아님 2014. 1. 24. 09:34

(출처-조선일보 2014.01.24)


[사설] 朴 대통령 연설장 찾은 日의 '이른바 평화주의자'


아베 신조 일본 총리는 22일 스위스 다보스 기자 간담회에서 태평양전쟁 A급 전범 14명이 합사(合祀)되어 있는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데 대해 "이른바 A급 전범을 추앙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며 "나라를 위해 싸운 분들의 명복을 비는 것"이라고 했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 2006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도 같은 얘기를 했다. 그러나 아베의 이날 말 속에는 가시처럼 가슴에 걸리는 표현이 하나 있다. 'A급 전범' 앞에 붙은 '이른바(いわゆる)'라는 표현이다. '소위(所謂)'나 '세칭(世稱)'이라고도 번역할 수 있다. 다른 나라 사람들이 전범이라고 하니까 전범이라고 말할 수밖에 없지만 마음속으론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은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재판에서 단죄된 일본 군국주의의 수괴들이다. 구체적으로 '침략 전쟁을 기획·시작·수행한 사람들'이다. A급 전범으로 기소돼 사형·무기형 등을 받은 25명 속에는 태평양 전쟁을 주도한 도조 히데키, 조선 총독을 지낸 고이소 구니아키, 만주사변 주모자 이타가키 세이지로, 난징 대학살 주범 히로타 고키 등이 포함됐다. 1930~40년대 조선인·중국인·아시아인 수백만 명을 죽음으로 몰아넣은 주역들이다. 처벌은 피했지만 아베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도 A급 전범으로 지목돼 체포까지 됐었다.

일본은 '전범을 단죄하고 전후 질서를 받아들인다'는 조항이 포함된 1952년 샌프란시스코 강화 조약을 통해 국제사회에 복귀했다. 그러나 일본에서 아베와 같은 사람들은 '전범'이란 규정 자체를 거부하고 있다. 이들의 속마음은 '전쟁에서 졌기 때문에 전범이 됐을 뿐'이라는 것이다. 아베가 작년 4월 "침략의 정의는 국제적으로도 정해지지 않았다" "국가 간 관계에서 어느 쪽에서 보느냐에 따라 다르다"고 말한 것도 이 연장선상에 있다. 기본 인식이 이렇기 때문에 야스쿠니를 참배하는 것이고, 야스쿠니에서 전범을 분리하자는 제안도 거부하는 것이다. 일본 아이치현에는 A급 전범 7명의 뼛가루를 모아놓고 '순국7사묘'로 부르는 시설도 있다.

독일 뉘른베르크 재판에선 나치 핵심 19명이 교수형, 종신형, 10~20년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독일의 책임 있는 사람이 이들을 "이른바 전범"이라거나 "순국"이라고 부르는 것은 상상할 수 없다. 일본만 이러는 것은 피해자인 우리가 아직 부족하고, 일본 내에서 독일과 같은 양심 세력이 위축돼 있기 때문이다.

아베는 다보스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연설 현장을 예고 없이 찾아와 앞자리에 앉아 연설을 다 듣고 손뼉도 쳤다고 한다. 국제사회에 일본은 대화하자는데 한국이 거부한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쇼라고 볼 수밖에 없다. 아베는 '적극적 평화주의자'를 자처한다. 아베 총리를 향해 '이른바 평화주의자'라 부른다면 뭐라 답할 것인가. 한·일 관계의 장래가 정말 걱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