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0.03.21 임민혁 논설위원)
2000년대 중반 한 가수의 인터뷰 기사에 댓글이 30만개가 넘게 달렸다.
아이돌 그룹 출신인 이 가수가 "록 음악을 하겠다"는 내용에 팬들과 안티 팬들이 뜨겁게 논쟁을 벌이면서
숫자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것이다. 몇 년이 지난 뒤에도 네티즌들은 '성지순례'라며 이 기사를 찾아와 글을 남겼다.
전 국민이 스마트폰을 들고 다니는 요즘이었다면 댓글 수가 어디까지 올라갔을까 궁금해진다.
▶세계인이 댓글을 달지만 우리는 좀 유별나다. '댓글 공화국' 말이 나올 정도다.
토론 문화가 정착되지 않아 익명이 보장되는 사이버 공간에서 그 욕구를 분출한다는 분석이 있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세계 최고인 것도 큰 이유일 것이다.
국내 최대 포털인 네이버에는 댓글이 하루 50만~70만개가량 달린다.
마스크 대란으로 민심이 폭발했던 지난달 말에는 31만명이 100만개 넘는 댓글을 남긴 날도 있다.
▶워낙 수가 많고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다 보니 댓글의 문제도 끊이질 않는다. 어느 순간 흉기로, 또 정치 행위로 변질된다.
'표현의 자유'로 보호만 할 수 없을 정도로 오염돼 있다는 지적도 많다.
젊은 연예인의 극단적 선택 후에는 빠짐없이 '악플에 시달렸다'는 전언이 뒤따른다.
정치 세력들은 여론 조작 수단으로 댓글을 악용했다.
전 정부는 국가기관이 댓글을 썼고 현 정부에서는 대통령 최측근 실세가 댓글 여론 조작 혐의로 재판을 받고 있다.
▶엊그제 네이버가 댓글 작성자의 '과거 이력'을 공개하면서 인터넷 공간의 댓글 여론전 민 낯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1분여 단위로 33개 기사에 "대통령님을 존경한다"는 글을 단 네티즌이 있는가 하면, 정부를 욕하는 다른 네티즌은
14년간 1만7000개 댓글을 썼다.
검찰총장 장모 의혹에 대해 작년 청문회 때 "사위가 장모 일을 어떻게 아느냐"고 했던 네티즌은 최근에는
"총장이 법 위에 있으니 장모 기소도 안 한다"고 했다. 친정부·반정부 인터넷 커뮤니티들은 서로
"저쪽의 조직적 여론 조작이 들통났다"며 손가락질하고 있다고 한다.
▶댓글난은 건전한 공론화의 장이 될 수 있다. 정말 촌철살인 댓글을 보면서 무릎을 친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다만 지금 정화가 필요하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주요 포털들이 매크로 조작 방지 기술을 개발하고 인공지능으로 욕설을 걸러내는 등 자정책을 내놓고 있다니
두고 볼 일이다. 그런데 악플 못지않게 독하고 저급해진 정치권의 언어는 또 어쩌나.
출처 :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20/03/21/202003210000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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