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특파원 리포트 - 한반도 통일에 대한 일본의 불안

바람아님 2014. 1. 25. 16:33

(출처-조선일보 2014.01.20 차학봉 도쿄 특파원)


일본의 한국 전문가들 사이에 작년 3월 출간된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라는 책이 화제이다. 
민간 싱크탱크인 '일본재생이니셔티브'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국가적 위기 시나리오를 미리 만들어 대비하자는 취지에서 
출판한 책이다. 이 책은 내부 권력 투쟁으로 인한 북한 붕괴 시나리오도 담고 있다. 
장성택 숙청을 미리 예견한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한국인 입장에서는 
북한 붕괴를 ▲일·중 간 무력 충돌 ▲일본 국채 폭락 ▲도쿄권 대지진 ▲핵 테러 ▲인구 감소 ▲에너지 위기 등과 함께 
'최악의 위기'로 평가한 것이 충격적이다. 
물론 북한 붕괴 자체를 위기로 지목한 것은 아니다. 북한이 붕괴되면서 한국에 흡수돼 통일되고 그 과정에서 '통일 한국' 
정부가 북한이 개발한 핵무기의 보유를 공식 선언하는 것을 '일본 최악의 시나리오'로 꼽았다. 
이는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지는 등 동북아의 불안정화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일본의 학자·정치인 중 한반도 통일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에 대해 전제 조건을 붙인다. 
친한파로 꼽히는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전 부총리는 "일본은 한국의 통일을 전폭적으로 지지한다"면서도 "다만 북의 핵무기 문제는 확실하게 처리해야 한다"고 했다. 통일 한국이 핵 보유를 선언하기 위해서는 NPT 탈퇴 등 국제적 고립을 각오해야 한다. 북한과 같은 위험 국가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현실적이다.

일본의 전문가들이 좀 더 현실적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것은 통일 한국의 친(親)중국화이다. 
'분단 한국'은 한·미 동맹과 미·일 동맹의 틀 속에 묶여 있어 일본 안보에 위협이 될 수는 없다. 
하지만 한반도 통일이 미군 철수와 한·미 동맹의 해체로 이어질 경우엔 안보상 현실적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통일 한국과 손잡고 일본을 공격할 수 있다는 식의 극단적 주장도 편다. 
미국도 그런 우려를 감추지는 않고 있다. 미국 국가정보위원회(NIC)는 2012년 발표한 '글로벌 트렌드 2030'이라는 보고서를 
통해 통일 한국이 미국의 영향권에서 벗어나려 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의 경제 성장, 군사 대국화, 미국의 경제력 쇠퇴, 군사비 삭감 등 이른바 '파워 밸런스'의 변화로 동북아의 긴장이 높아지고 있다. 일본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적극적 평화주의'를 내걸고 군사력 강화와 동맹국 확대를 추진하는 것은 이런 힘의 
변화에 대비한다는 명분이다. '동북아의 발칸화(Balkanization)'라는 말도 일본 전문가 입에서 자연스럽게 흘러나온다.

동북아의 갈등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 등 아베 총리의 역사인식 문제가 촉발했지만, 한국이 일본의 불안에 불을 붙일 
필요는 없다. 한국은 통일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미국·중국뿐 아니라 일본의 협조가 필요하다는 점을 감안한 지혜로운 전략이 
필요하다. 정부는 통일이 한국뿐 아니라 주변국에도 '대박'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설득할 수 있는 국제적인 '통일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