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협상은 20년 동안 '합의'와 '파기'를 거듭하며 난항을 이어가고 있다.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한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체제가 붕괴하고 6자회담의 공전이 길어지는 가운데 북한은 핵실험을 세 차례나 감행하고 '핵보유국'임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양낙규 기자의 Defense Club 바로가기
북한 핵문제는 1993년 3월 북한이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대북 특별사찰 요구 결의안에 반발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
핵무기비확산조약(NPT) 탈퇴 방침을 통보하면서 촉발됐다.남북한이 1991년 12월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채택한 지 1년여
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1차 북핵 위기'로 일컬어지는 이 사태가 터지자 미국은 북한과 고위급 양자회담에 나서 북한의 NPT 탈퇴 유보와 IAEA 핵사찰
수용을 끌어냈다. 북미 양측이 1994년 10월 제네바에서 기본합의문에 조인하면서 위기는 일단 봉합됐다. 미국이 북한에 경수로
를 지어주고 북한은 영변 핵시설을 동결한다는 것이 합의의 골자였다. 합의에 따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가 설립돼
북한과 협정을 맺고 경수로 공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갑자기 불거진 금창리 핵시설 의혹, 경수로 공사 지연과 중유 공급 중단 등을 이유로 북한이 합의 파기를 거론하는 등
삐걱대던 제네바 합의 체제는 2002년 10월 '2차 북핵 위기'로 무산됐다. 2차 북핵 위기는 미국의 제임스 켈리 당시 미 국무부
동아태 담당 차관보가 특사 자격으로 2002년 10월 방북해 고농축우라늄(HEU) 개발 의혹을 제기하고 북한이 이를 시인하면서
불거졌다. 북한은 같은 해 12월 핵동결 해제를 선언한 데 이어 이듬해 1월에는 NPT 탈퇴를 정식 선언하면서 '제네바 합의'는
휴짓조각이 됐다.
이후 국제사회가 북한 핵문제 해결을 위해 고안한 새로운 협상 틀은 북한과 미국뿐 아니라 한국, 중국, 일본, 러시아도 참가하는
6자회담이었다. 북미 양측의 합의로 탄생한 제네바 합의 체제의 붕괴를 교훈삼아 합의 이행을 담보하기 위해 다자회담의 틀을
짠 것이다.
2003년 8월 중국 베이징에서 막을 올린 6자회담은 2008년 12월까지 여섯 차례 열리며 일정한 성과도 거뒀지만, 북한 핵문제의
근본적 해결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회담 참가국들은 2005년 7∼9월 열린 제4차 회담에서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핵프로그램을
포기하는 대신 체제 보장과 경제적 지원을 얻도록 하는 '9·19 공동성명'에 합의했다. 2007년에는 9·19 공동성명의 구체적인
이행 계획을 담은 '2·13 합의'와 '10·3 합의'도 도출됐다.
그러나 북한은 미국 정부가 9·19공동성명 발표 직전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을 자금세탁우려 대상으로 지정해 북한의 계좌
를 동결하자 2006년 10월 1차 핵실험으로 대응하며 6자회담을 위기에 빠뜨렸다. 이어 회담이 중단된 2009년 5월에는 2차
핵실험을 감행했다.
외교당국은 지난 6일 대통령 업무보고를 통해 북핵 문제 진전을 위해 올해 미국과 포괄적인 대북 전략공조체제를, 중국과는
전략 대화를 각각 강화하겠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앞으로도 실질적인 회담 재개 과정에 이르기까진 적잖은 난관이 있을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해 6자회담 당사국의 정부 당국자들은 한국과 미국, 중국을 중심으로 수차례 서로 교차 방문하는 등 6자회담 재개와 관련한
서로의 분위기와 조건을 논의했다. 한미간 결론은 '북한의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 없는 회담 재개는 없다'로 귀착된 것으로
보인다.
중재자 역할을 자임한 중국이 미국을 향해 회담 재개를 설득하는 과정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2·29 북미합의 이후에도
장거리 미사일 발사와 3차 핵실험을 감행한 북한과 무작정 대화할 수 없다는 게 우리 정부 관계자들이 전하고 있는 지난해까지
의 대체적인 분위기였다.
이런 흐름에서 올들어 분명해지고 있는 북한의 이산가족상봉 제안 등 대남 평화공세와 6자회담 이슈 띄우기는 북한이 먼저 회담
재개 의지를 한반도 주변국들에게 던지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이산가족상봉의 경우 6자회담 재개를 향해 북한이 내딛은
첫 걸음이 아니겠냐고 보는 시각에도 별 무리가 없어 보인다.
이와 관련 러시아의 세르게이 라브로프 외무장관이 지난 21일(현지시간) "현 북한 지도부는 어떤 전제조건도 없이 6자회담을
재개할 준비가 돼 있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고 말했다. 중국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우다웨이(武大偉) 한반도사무특별대표
역시 최근 미측 수석대표인 글린 데이비스 대북정책특별대표를 만난 자리에서 6자회담 재개를 서둘러야 한다는 입장을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북한 외교관들이 최근 전달하고 있는 북측의 입장은 비교적 구체적이어서 북한의 평화공세가 어디를 향하고 있는지를
짐작케한다.
신선호 유엔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24일(현지시간) 유엔본부에서 자청한 기자회견을 통해 "설명절부터 서해 5개 섬을 포함해
모든 적대행위를 전면 중지하자는 제안의 실천적 행동을 먼저 보여주겠다"며 최근의 평화공세가 위장공세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이어 지재룡 주중 북한대사는 29일 "6자회담 재개를 지지한다. 우리가 6자회담이라는 쪽배에 먼저 타고 자리를
잡았으니, 나머지 참가국들이 빨리타서 이 쪽배가 출항하기를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움직임에도 불구하고 장성택 처형 사건 이후 북한 내부 불안정성이 증대하고 있어, 북한의 움직임을 더 지켜봐야 한다는
신중론이 미 행정부 내에서 커지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되기도 한다.
최근 한국을 방문한 데이비스 대표가 우리측 6자회담 수석대표인 조태용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을 만나 "비핵화와
관련해 북한은 아직 아무런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말해 이를 반증하고 있다. 결국 한미 군사훈련중단 등 대북
적대행위부터 멈추라는 북한의 입장과는 달리 실질적인 비핵화 조치가 먼저라는 한미의 입장이 여전히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정부 소식통은 "미국 내 분위기가 북한이 핵개발을 지속하는 한 협상하지 않겠다는 기류로 쏠렸다"며 "남북관계의 일시적
개선이 북미 간 대화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보긴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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