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1.05.03 03:00
붓다가 죽고 난 후에 나온 사리(舍利)를 어떻게 분배할 것인가가 문제였다. 부처님 진신사리에는 신비적 영험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사리 분배를 두고 여러 부족 간에 전쟁이 날 수도 있는 위험한 상황이었다. 당시에 가장 신망이 높았던 도나(Dona) 바라문이 분배의 역할을 맡았다. 도나의 중재로 8등분을 하였다. 각기 지역별로 8군데에다가 사리탑을 세웠다. 항아리를 모시는 병탑, 재를 모시는 회탑까지 포함하면 도합 10군데에 탑이 세워졌다. 중재를 맡았던 도나는 사리를 모셨던 항아리를 가졌고, 뒤늦게 현장에 온 모리야족은 화장을 하고 난 후의 재를 가져갔다.
https://www.chosun.com/opinion/specialist_column/2021/05/03/4YGTR2GHTRETRIOUEVWWCRDOXE/
[조용헌 살롱] [1295] 진신사리와 李컬렉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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