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조선일보 2013.11.28 허영한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36년 전 신혼여행 사진 찍었던 곳, 지금은 새로운 연인들 지나가…
사진을 매개로 만난 과거와 현재… 실물의 不在 앞에서 깊어지는 생각
바로 찍어 '카톡' 올려 공유하는 '즉물적 사진'으론 못 느끼는 感動
작년 가을 지인들로부터 오래된 사진들을 얻어 들고 산천을 혼자 돌아다닌 적이 있다.
아주 새로운 작법은 아니지만, 사진이 사진으로 남아서 그 사진 속의 오래전 모습들이 세월이 흐른 뒤 사진 한 장 속에서 현재와 다시 만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연애'를 주제로 한 사진이 필요했던 터라 주변 사람들의 오래된 연애 시절 사진들을 구해보았다. 요즘은 사진이 일과가 되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이 엄청난 관계의 증명이자 수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그 시절 사진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오래된 사진보다 그 부모님의 사진을 구하는 편이 더 쉬웠다. 어렵사리 구한 열 장 남짓한 사진을 들고 그 장소들을 찾아갔다. 사진 당사자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고, 누가 봐도 어딘지 알아볼 만한 곳도 있었다.
전북 정읍 내장사, 충남 대천 해변, 부산 해운대, 경남 거제도, 강릉 경포대 등 그 산천이 의구한 곳도 있었고, 상전벽해(桑田碧海) 앞에서 막막한 순간도 있었다. 이를테면 '사랑이 변하는가, 산천은 의구한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사람보다 먼저 변한 산천도 있고, 산천보다 의구한 사랑도 있다'는 자명한 결론을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에 담는 경험이 되었다.
36년 전 신혼 첫날 내장사 대웅전 앞에서 찍은 부부의 사진은 주변 풍경에 아주 잘 들어맞았고, 광주 무등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며 찍은 30년 전 연인 사진은 철골 구조와 색은 바뀌었지만 느낌은 생생했다. 고장 난 리프트 꼭대기까지 가파른 산길을 뛰어올라 가느라 기절할 뻔했지만,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 흡사 내 추억인 듯 반갑고 설�다. 해운대에서는 30년 전 사진의 연인들 옆으로 때마침 지금의 연인들이 지나갔다.
내장사 앞마당에는 그때 없었던 나무가 지붕 높이에 이르고 있었고 없었던 건물도 새로 지어졌지만 멀리 산 능선은 그대로였다. 36년 전 사진을 찍어주었던 누군가가 섰을 그 자리에 서서 한 손에 사진을 들고 지금의 풍경과 선을 맞추어 사진을 찍었다. 오랜 세월이 손끝에서 만났다.
내장사의 사진을 찍은 지 3주쯤 뒤, 대웅전은 화재로 전소했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되고, 우리가 사진 찍는 세상의 모든 일은 그렇게 열심히 사라져 간다. 지금 그곳에서는 임시로 비닐하우스로 만든 대웅전에서 신도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다. 언젠가 더 좋은 모양으로 재건될 것이지만, 그 풍경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진을 하면서 혹은 나이가 들면서 가장 울컥하는 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 흘러버린 나와 타인의 세월이다. 어떤 경우 사진의 가치는 실물의 부재에서 더 깊어지기도 한다. 지금 없는 것에 대한 기억은 사람 마음속에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연민'으로 작용한다. 부재와 세월은 사진 한 장이 증명하는 공존의 순간에 많은 이야기와 회한의 감동을 부여한다. 그래서 사진은 시간의 예술이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매체인 것이다.
아주 새로운 작법은 아니지만, 사진이 사진으로 남아서 그 사진 속의 오래전 모습들이 세월이 흐른 뒤 사진 한 장 속에서 현재와 다시 만나는 것은 흥미 있는 일일 것이라 생각했다. '연애'를 주제로 한 사진이 필요했던 터라 주변 사람들의 오래된 연애 시절 사진들을 구해보았다. 요즘은 사진이 일과가 되었지만, 좋아하는 사람과 함께 찍은 사진 한 장 남기는 것이 엄청난 관계의 증명이자 수확이었던 시절이 있었다. 그만큼 그 시절 사진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주변 사람들의 오래된 사진보다 그 부모님의 사진을 구하는 편이 더 쉬웠다. 어렵사리 구한 열 장 남짓한 사진을 들고 그 장소들을 찾아갔다. 사진 당사자들도 기억하지 못하는 곳도 있었고, 누가 봐도 어딘지 알아볼 만한 곳도 있었다.
전북 정읍 내장사, 충남 대천 해변, 부산 해운대, 경남 거제도, 강릉 경포대 등 그 산천이 의구한 곳도 있었고, 상전벽해(桑田碧海) 앞에서 막막한 순간도 있었다. 이를테면 '사랑이 변하는가, 산천은 의구한가'에 대한 질문이었는데, '사람보다 먼저 변한 산천도 있고, 산천보다 의구한 사랑도 있다'는 자명한 결론을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에 담는 경험이 되었다.
36년 전 신혼 첫날 내장사 대웅전 앞에서 찍은 부부의 사진은 주변 풍경에 아주 잘 들어맞았고, 광주 무등산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며 찍은 30년 전 연인 사진은 철골 구조와 색은 바뀌었지만 느낌은 생생했다. 고장 난 리프트 꼭대기까지 가파른 산길을 뛰어올라 가느라 기절할 뻔했지만, 그 위에 올라서는 순간 흡사 내 추억인 듯 반갑고 설�다. 해운대에서는 30년 전 사진의 연인들 옆으로 때마침 지금의 연인들이 지나갔다.
내장사 앞마당에는 그때 없었던 나무가 지붕 높이에 이르고 있었고 없었던 건물도 새로 지어졌지만 멀리 산 능선은 그대로였다. 36년 전 사진을 찍어주었던 누군가가 섰을 그 자리에 서서 한 손에 사진을 들고 지금의 풍경과 선을 맞추어 사진을 찍었다. 오랜 세월이 손끝에서 만났다.
내장사의 사진을 찍은 지 3주쯤 뒤, 대웅전은 화재로 전소했다. 사진은 찍는 순간 과거가 되고, 우리가 사진 찍는 세상의 모든 일은 그렇게 열심히 사라져 간다. 지금 그곳에서는 임시로 비닐하우스로 만든 대웅전에서 신도들이 불공을 드리고 있다. 언젠가 더 좋은 모양으로 재건될 것이지만, 그 풍경은 다시 볼 수 없을 것이다. 사진을 하면서 혹은 나이가 들면서 가장 울컥하는 것은 내가 모르는 사이 흘러버린 나와 타인의 세월이다. 어떤 경우 사진의 가치는 실물의 부재에서 더 깊어지기도 한다. 지금 없는 것에 대한 기억은 사람 마음속에서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연민'으로 작용한다. 부재와 세월은 사진 한 장이 증명하는 공존의 순간에 많은 이야기와 회한의 감동을 부여한다. 그래서 사진은 시간의 예술이고, 표현하고 기억하는 매체인 것이다.
- 오래전 사랑하는 사람끼리 사진을 찍던 그 자리에 가서 카메라 뷰파인더 속 풍경에 사진을 앉혀보았다. 그대로 딱 들어맞았지만 변한 것이 있었다. 그동안 켜켜이 쌓인 시간이 그제야 비로소 보였다. 찍자마자 돌려봐야 직성이 풀리는 SNS 시대의 디지털 사진으로 이 시간의 무게를 느낄 수 있을까. /허영한 기자
사진 작법(作法)이 등장했고, 이런 사진은 그 종류만큼 다양한 논쟁을 불렀다. 디지털 기술을 적용한 여러 사진 기법 또한
시간 개념의 차용이란 측면에서 사진과 시간의 밀접한 관계는 여전히 여러 사진가의 작업 결과가 웅변하고 있다.
그러나 굳이 인위적 형식으로 표현하지 않아도 누군가의 오래된 사진은 보는 사람의 기억과 만나 각자의 감흥을 불러일으키고 마음을 건드려 큰 울림을 주기도 한다. 좋은 사진과 잘 찍은 사진은 그래서 많이 다르다.
초년에 모셨던 부장은 친구 결혼식 흑백사진을 그 아들이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서야 전해주었다는 전설이 있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 느닷없이 과거로부터 온 선물을 받은 그 친구의 놀라움은 상상이 간다.
휴대폰으로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는 즉물적 사진이 안겨주기 쉽지 않은 감동일 것이다.
스트레이트 포토(Straight Photography) 개념을 소개한 사이트 "photoman" 바로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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