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學,藝術/사진칼럼

허영한의 사진 前後 - 사진의 格, 사람의 格

바람아님 2014. 4. 21. 20:56

(출처-조선일보 2014.03.허영한 멀티미디어영상부 차장)

被寫者의 총체적 紀念인 사진… 촬영 과정과 이후의 태도에서 그의 인생 궤적, 人品 포착돼
사진을 액세서리로 보지 않고 교감·표현·創意 결과로 대하는 日 출판인 성의에 감명 받아

언론매체와 인터뷰하는 일이 일상인 유명인을 제외하면 사진기자에게 사진 찍히고 신문에 실리는 것은 오래 기억될 일일 것이다. 수천 명은 족히 될 취재원, 즉 사진의 모델이 되었던 분 중 일부는 내가 찍은 사진 한 장 간직하는 소박한 기쁨을 청하기도 한다. 소박한 요청을 야박하게 원칙 운운하며 거절할 일은 아니어서 어지간하면 기념하기 좋을 만한 사진을 한두 장 골라서 보내기도 한다.

사진 찍는 일이 직업이다 보니 사진 찍히는 잠깐의 태도만 봐도 그 사람의 살아온 과정이나 인품을 대략 짐작할 수 있다. 사진기자 앞의 카메라는 찍는 사람이 인간적으로 관찰되는 것을 상당 부분 방어해 주기 때문에 상대방은 방심하는 경우가 많다. 대부분 사진 찍는 과정에서 파악되는 인격은 사진을 요청하는 자세와 거의 일치한다. 사진기자 20년이 넘으니 드디어 관상을 보게 된 것이다.

사진이 당사자에게 기념되는 일은 각별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그때 내 모습이 어땠나, 어떤 사연으로 신문에 사진 찍혀 나왔는가'에 대한 기념일 수도 있지만, 그 자리를 기록한 사진과 글은 기록자의 시각에서 어떻게 표현되었는가의 총체적 기념이기도 하다. 쉽게 알아볼 수는 없지만, 오만하거나 이기적인 사람은 사진에도 그런 성향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사진은 기능적으로 셔터를 눌러 모습을 베끼는 것이 아니라 사진가의 생각을 거쳐 재현되는 매체이기 때문에 교감에 실패하거나 불편한 관계가 은연중에 조성되면 어쩔 수 없이 사진 어느 구석에라도 그런 어색함이 드러난다. 이런 경우 나중에 사진 달라는 이야기 듣는 것조차 불편하다. 그래도 나는 보낼 만한 분에게는 보내려고 노력한다. 어느 기업인은 사진을 청하지 않았지만, 그의 기업 하는 자세와 정신이 존경스러워서 직접 프린트한 사진을 액자에 넣어 전했다. 그런 사람의 기운을 만나는 것은 즐거운 일이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보답이었다.

사진을 보내고 난 뒤의 반응도 대부분 만난 순간의 인상과 비슷하다. 성의에 진심으로 고마워하는 사람도 많지만, 애초에 어색하고 내키지 않았던 분위기는 사진을 보낸 뒤에도 그대로 반복된다. 사진을 더 보내 달라거나 심한 경우 그날 찍은 사진을 모두 보내 줄 수 있느냐는 요청을 받은 적도 있다. 그것도 직원이 대신 전화했다. 때로는 받았는지 말았는지 무응답이기도 하다. 사진은 그의 인생에서 수집하거나 과시하는 수단일 뿐, 교감하고 표현하는 창의의 결과라는 생각은 없기 때문이다. 사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얼마나 멋지게 찍혔나가 아니라 그 순간의 '관계'라고 한다면 무리한 기대일까. 그래도 삶의 의미 있는 순간에 있는 사람을 만나 이야기 듣고 사진이란 언어로 표현하는 것은 직업인으로서의 기쁨이다.

인생에 좋고 미래에 좋다는 가르침을 담은 책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런 인생의 보약 같은 책에는 의외로 많은 사진과 그림이 들어가 있다. 멋진 풍경사진이나 감성을 건드리는 아련한 이미지 사진들이 다양하게 쓰인다. 심한 경우 책의 거의 절반 가까운 분량을 사진이 차지하기도 한다.

[허영한의 사진 前後] 사진의 格, 사람의 格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그중 내가 좋아하는 시인의 책을 포함해서 일부는 사진을 찍은 작가의 이름은커녕 출처조차 밝혀놓지 않았다. 
아마도 출판사에서 사진 판매 회사에 몇만원씩 주고 구입했거나 수십만원짜리 묶음으로 구입했을 것이다. 
여기서 사진은 책의 형식으로 포장하는 과정에 유용한 액세서리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아깝지만 돈을 내고 사진을 샀을 것이다.

훌륭한 책이 적잖은 부분 이름 모를 사진가와 화가에게 신세 지고 나왔다. 
책이 팔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고, 독자들의 호흡과 감정 조절에 크게 기여했을 것이다. 
책의 격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만 그것이 그들에게 무슨 상관인가. 
사진이 영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는 사람을 포함해 많은 사람이 '사진 한 장이 백 마디 말보다 큰 힘을 지닌다'고 말한다. 
사진 하는 사람은 그 말의 진의를 바로 안다. 많은 경우 사진의 본질인, 창의와의 관계는 알지 못한다.

몇 년 전 친한 일본 기자의 지인이 출판하는 소설책 표지에 쓸 사진을 부탁받았다. 
한국 화가의 달동네 그림이 아주 좋아 표지에 쓰고 싶은데 대작인 그림을 촬영해 줄 수 있느냐는 것이었다. 
우리 용어로는 '복사'다. 흔쾌히 부탁을 들어주었다. 평소에 잘 쓰지 않던 간접조명까지 설치해가며 찍은 사진을 그들은 
과분하리만치 좋아하고 고마워했다. 그리고 훌륭한 저녁식사와 함께 원고료도 주었다. 화가에게는 더 많은 원고료가 갔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2년쯤 뒤 일본에서 연락이 왔다. 판형을 줄여 개정판을 내게 되었으니 또 원고료를 보내겠다고 했다. 
책에는 화가의 이름은 물론 촬영자의 이름도 들어가 있다. 돈의 액수가 문제가 아니라 이런 정성과 풍토가 어찌 고맙고 기쁘지 
않겠는가. 사람이건 사람이 만든 물건이건 그 격(格)은 사람이 스스로 결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