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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꼭 가봐야 할 히든 플레이스 ②'

바람아님 2014. 4. 26. 00:31
아름답고 소중한 것들은 금세 사라지는 경우가 많죠. 봄 역시 그렇습니다.

지구 온난화 탓인지 '드디어 봄'이다 싶으면 '어느새 여름'이 되는 상황이 해가 갈수록 더해지는 것 같습니다. 휴일인 어제도 낮 기온이 24도까지 올라가며 '벌써 여름 같은 봄 날씨'라며 마음이 조급하신 분들 적지 않을 겁니다. 봄꽃 구경은 물론이고 제대로 봄나들이 한번 못했는데 봄이 가 버리면 어쩌나 싶어서죠.

게다가 올해는 보기 드물게 여의도 벚꽃이 일찍 져버리는 바람에 아예 서울에서 봄꽃구경은 이제 끝났다 생각하고 실망한 분들 적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서울에는 보석 같은 계절, 꽃과 어우러진 멋진 장소들이 적지 않습니다. 이 봄이 가기 전 꼭 가봐야 할, 봄에 특히 매력적인 서울의 히든 플레이스를 추천해 드립니다.

1. 도심 한가운데서 10분 만에 청정한 계곡을 만나고 싶을 때: 인왕산 수성동 계곡

도심 한복판에서 버스를 타고 10분만 가면 청정한 계곡을 만난다니, 저도 직접 가보기 전에는 믿지 않았습니다. 거짓말 같지만 사실입니다. 서울시청 옆 프레스센터에서 9번 마을버스를 타고 10분가량만 가면 정말 강원도 첩첩산중에 있는 계곡 못지않은 시원한 풍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곳은 찾기도 쉽습니다. 9번 마을버스를 타고 종점에 내리기만 하면 됩니다.

단, 올봄에는 중부지방이 '봄 가뭄'이라고 할 만큼 강수량이 적어 계곡의 물이 지난해만큼 풍성하진 않지만, 그래도 졸졸 흐르는 물과 함께 소담하게 핀 각종 봄꽃들을 보고 있자면 저절로 마음이 정화되는 느낌이 듭니다.

도심 한가운데서 계곡물에 발을 담근 호사를 누린 김에 짧지만 등산한 기분까지 누리고 싶다면 계곡 뒤로 조금 들어가기만 하면 됩니다. 그럼 동네 사람들이 주로 찾는 가파른 계단이 있는 등산로가 하나 나옵니다.

들어가는 초입이 돌계단은 제법 가파르지만, 그리 길지 않은 돌계단을 한 10분만 참고 오르면 또 놀라운 광경이 나옵니다. 바로 서울 도심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장소를 만나기 때문입니다. 등산 욕심이 생긴다며 더 올라도 좋지만 사실 여기까지 본 뒤 내려와도, 이미 몸과 마음은 한층 맑고 건강해진 기분을 느끼실수 있을 겁니다.

2. 봄꽃과 어우러진 역사의 현장을 느끼고 싶을 때: 종로 박노수미술관

수성동 계곡에서 맑은 기운을 듬뿍 받고 내려오는 길, 여유시간이 넉넉하다면 바로 인근에 있는 박노수 미술관에 꼭 한번 방문하시길 권합니다. 박노수 미술관은 지난해 타계한 한국화의 거장 박노수 화백이 생전에 거주하던 자신의 집을 종로구에 기증하면서, 그의 이름을 따서 만들어진 공공미술관입니다.

박노수 화백은 배우인 이민정씨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한데요. 박노수 화백이 기증한 자신의 저택은 그 집 자체가 엄청난 근대 유적입니다.

바로 1910년 순종에게 국권을 빼앗기게 한 한일합병합 조약에 옥새를 찍게 강요했던 친일파 윤덕영이 딸에게 하사한 저택인 겁니다. 당대 최고의 권세가였던 윤덕영은 끔찍하게 아낀 딸에게 중국과 일본 그리고 한국의 3국의 건축적 특징이 어우러지는 초호화저택을 지어줍니다. 요즘 봐도 호사스런 벽난로와 지금 써도 손색이 없는 욕실과 화장실 등 저택 자체가 일제강점기 시절 최상류층의 주거 문화가 어떠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게 하는 귀중한 역사입니다. 뛰어난 예술가였던 박노수 화백은 일제 강점기의 문화와 역사를 알려주는 중요한 자산인 자신의 집을 잘 관리했고, 사후엔 이를 공공에 기증해 시민 들이 일제 강점기의 역사와 문화를 알 수 있게 한 겁니다. 특히 봄꽃이 만발한 이맘때는 정원에서 바라본 저택, 저택에서 바라본 정원이 가장 아름다운 시기이기도 합니다.

3. '봄볕' 즐기며 산뜻한 '봄옷' 사고 싶을 때:용산 이태원시장

요즘 가장 '뜨는' 동네를 꼽을 때 이태원을 빼놓을 수 없겠죠. 경리단 길과 해방촌 길 등 예전에는 미군들과 동네 사람들만 주로 찾던 골목들이 트렌디한 레스토랑와 가게들이 속속 생기면서 강남 가로수길을 대체하는 유행의 거리로 각광 받고 있는데요. 이태원이 주목받으며 이태원 전역이 들썩이는 분위기지만, 이태원에서 아직 비교적 조용하면서 예쁜 옷은 물론 저렴하고 맛있는 맛집까지 숨어 있는 곳이 바로 이태원 시장과 그 뒤쪽 골목입니다.

이태원시장이라고 하면 시장이니 당연히 채소나 과일, 생활용품을 파는 지상 재래시장을 떠올리는 분들이 있겠지만, 이곳은 2층짜리 상가건물의 지하 1층과 지상 1층의 의류전문쇼핑몰입니다. 사실 이태원시장은 예전부터 옷 좀 입는다는 패션 피플들 사이에선 꼭 순례해야 할 성지(聖地)중 하나였습니다. 해외 유명브랜드의 B품(봉제 불량이나 사소한 하자로 정식 판매되지 않는 의류)부터 구제와 빈티지 제품까지, 정확한 출고 루트는 알 수 없지만 아무튼 감각적이면서 독특하고 이쁜 옷들이 잔뜩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이태원시장이 좋은 이유는 뒤편으로 이리 저리 걷는 재미가 쏠쏠한 골목길이 있어서 인데요.

구석 구석 골목길에는 이태원시장보다 더 유니크한 옷을 파는 옷집 들이 즐비하고, 그 옷집들 사이로 싸고 맛있는 맛집들이 포진해 있습니다. 6천 원이면 몸에 좋은 온갖 나물이 푸집하게 한상 가득 나오는 밥집, 점심이면 줄 서서 먹는 칼국수 집, 뛰어난 실력의 요리사가 내놓는 비교적 저렴한 프렌치식당까지 입맛대로 고를 수 있습니다.

4. 시간을 이겨낸 100년 건축물에서 마음껏 사색 하고 싶을 때:서울시청 서울도서관

전 개인적으로 도서관과 미술관, 박물관은 도시에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좋은 예술과 문화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의 마음과 행동을 더 나은 방향으로 나아가게끔 하는 힘이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다양한 책, 그림, 문화재를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도시가 제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도시인데, 서울의 도심 한가운데에는 책에 있어선 그런 공간이 있습니다.

바로 예전 서울시청 구청사 전체를 도서관으로 바꾼 서울도서관이 그곳입니다.

서울광장 바로 앞에 있는 이 건물이 아직도 도서관인줄 모르는 분들도 적지 않은데요.

일단 들어가 보면, 100년이 넘는 구청사 건물 자체도 아주 매력적이지만 엄청난 장서량에 또 한번 놀라게 됩니다.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은 일명 '책 계단'이라 불리는 계단형 좌석에서 마음대로 책을 볼 수 있는 곳인데요. 도서관이면 딱딱하고 조용하게 책만 읽어야 한다는 고정관념을 단번에 깨는 곳입니다.

이곳에서 아이들이 자유롭게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면, 책에 심취한 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 광경인지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특히 책에 푹 파묻혀 있다가 밖을 보면 눈의 피로를 단숨에 날려주는 광경이 있습니다.

선명한 초록잔디가 새로 깔린 서울광장이 그것인데요. 도서관을 떠나기전 꼭 도서관 옥상도 올라가 보시길 바랍니다. 광화문부터 서울광장, 덕수궁까지 모두 볼수 있는데 평소와 다른 눈높이에서 보는 서울의 대표적 명소의 풍경이 탄성이 절로 나올만큼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