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럴드경제 2024. 2. 24. 00:21
[작품편 93.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동행하는 작품>
샬롯의 여인
성 에우랄리아
에코와 나르키소스
일레인은 노래를 불렀다.
그건 어릴 적 어머니가 들려준 사랑 노래였다. 그녀는 음에 맞춰 몸을 가볍게 움직였다. 사랑한다, 보고 싶다는 식의 가사를 가만히 곱씹었다. 그러다 보면 이 갑갑한 현실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었다. '너는 네 눈으로 바깥세상을 보면 죽으리라.' 일레인은 수년 전에 걸린 신의 저주를 잊지 못했다. 그녀가 잘못한 건 없었다. 그저 신이 질투할 만큼 예뻐지고 있다는 게 죄라면 죄였다. 일레인은 신의 음성을 들은 그날 이후 지금껏 햇빛을 보지 못했다. 아서왕이 사는 성(城) 카멜롯 근처의 샬롯섬 탑에 갇혀있었다.
일레인은 이곳에서 홀로 천을 짜며 살았다.
물밀듯 답답함이 밀려오면 노래를 불렀고, 파도치듯 사무침이 요동치면 벽에 걸린 거울을 들여다봤다. 거울 귀퉁이로 비치는 밖을 엿보며 눈물을 뚝뚝 흘리곤 했다. 그녀는 평생 이러기만 하다 생을 끝낼 운명이었다. 그녀를 시기한 신이 바란 게 바로 그것이었다.
일레인은 거울을 통해 밖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데, 그곳에는 그간 본 적 없던 장면이 비치고 있었다. 원탁의 기사(Knights of the Round Table) 랜슬롯이 말을 타고 지나가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잘생긴 사내는 처음이었다. 이토록 늠름한 기사 또한 처음이었다. 일레인은 밑도 끝도 없이 사랑에 빠졌다. 휘몰아치는 이 감정을 주체하지 못했다.
그녀는 서둘러 탑에서 빠져나왔다. 작은 배를 찾아 그 위에 올랐다. 샬롯의 여인, 샬롯의 여인…. 그녀는 뱃머리에 이 글자를 다급히 새겼다. 쇠사슬이 풀린 배는 랜슬롯이 있을 그 성을 향해 물살을 갈랐다. 영국 화가 존윌리엄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 1849~1917)가 이 장면을 화폭에 옮겼다. 깊은 두 눈과 빨간 입술, 매혹적인 붉은 머리와 눈꽃처럼 새하얀 옷을 입은 일레인은 과연 신이 그 미모를 질투할만해 보인다. 초조한 표정의 일레인은 배에 걸려있던 쇠사슬을 말고삐처럼 쥐고 있다.
https://v.daum.net/v/20240224002140875
“이 미녀는 왜 이 꼴로?” 배위 사망 미스터리, 아무도 몰랐던 사연[이원율의 후암동 미술관-존 윌리엄 워터하우스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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