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2024. 11. 7. 00:36
[개신교 선교 140주년 美 현장을 가다] [1] 월리엄 전킨과 유니온신학교
1885년 4월 5일 미국 북장로교의 호러스 언더우드(1859~1916)와 감리교의 헨리 아펜젤러(1858~1902) 선교사는 “누가 먼저 조선 땅에 발을 디딜까 다투지 말자”고 의기투합해 팔짱을 끼고 함께 제물포항에 발을 디뎠다. 내년은 이들로부터 시작된 한국 선교 140년. 고국에서의 편안한 삶을 뒤로하고, ‘은자의 나라’ 조선에 도착한 초기 선교사들은 학교를 세워 선진 지식을 가르친 교사이자, 서구 의술로 병을 고친 인술의 실천자였고, 조선인의 마음속에 독립의식을 심어준 스승이었다.
“제가 한 일을 희생이라 부르지 마십시오. 한때 저도 그렇게 생각했지만, 지금 저는 제가 한국에서 사역할 기회를 놓치지 않게 해주신 것에 감사할 뿐입니다.”
1908년 2월 윌리엄 전킨(1865~1908) 선교사가 선교지 전주에서 풍토병으로 별세할 때 남긴 말을 딸 메리는 이렇게 전했다. 지난달 31일(현지 시각) 미국 버지니아주 리치먼드, 전킨 선교사의 모교인 유니온 장로교 신학교. 선선한 바람 아래 햇볕은 따뜻하고, 단풍물이 듬뿍 든 나무들 사이 건물이나 집 앞에는 알록달록한 핼러윈 장식물들이 놓여 있었다.
판사의 손자, 목사의 아들, 훤칠한 키에 맑은 테너로 성가를 부르면 홀리듯 사람들이 모여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 전킨. 그는 1892년 11월 조선에 도착해 1893년 전주, 1896년 4월부터는 군산을 중심으로 조선인들과 함께 생활했다....세 아들을 조선에서 모두 풍토병으로 잃어 조선 땅에 묻어야 했던 것이다......전주에서 눈을 감을 때 전킨은 이런 유언을 남겼다. “이것이 죽음이라면 참 좋군요. 저는 갑니다. 저는 정말 행복합니다.”
서울을 중심으로 연희전문학교와 배재학당 등을 세운 언더우드와 아펜젤러의 활동은 널리 알려져 있지만, 그 직후 호남과 충청에서 활동한 남장로교 선교사들의 활동은 상대적으로 조명받지 못했다. 전킨은 군산에서 시작해 호남 지역에 학교와 병원, 교회를 세워 부모 잃은 아이들과 아픈 사람들을 돌보며 미국 선교 역사에서 ‘7인의 선구자(frontier)’로 불린 남장로교 선교사 일곱 명 중 한 사람이었다.
https://v.daum.net/v/20241107003646918
전주·군산에 학교 세워… 아들 셋 조선 땅에 묻고도 “나는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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