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강천석 칼럼] 李承晩이라면 東北亞 어떻게 헤쳐갔을까

바람아님 2014. 7. 19. 10:31

(출처-조선일보 2014.07.18 강천석 논설고문)

미국 의심하며 협력하고 일본 경계하며 대화한 초대 대통령
국제 정세 안전 항해 출발은 바다 정확히 모른단 걸아는 것

강천석 논설고문 사진우리는 한국만큼 일본을 정확히 아는 나라는 세계에 없다고 믿고 있다. 

한국처럼 오래 가까이서 중국을 겪은 나라는 없다고 확신한다. 

한국과 미국 사이같이 100만명이 넘는 두 나라 병사가 함께 피를 흘리며 사선(死線)을 넘었던 경우가 

어디 흔하냐(패망(敗亡)한 사이공 정부는 예외로 하고)며 미국을 속속들이 아는 듯 느끼기도 한다. 

한국 외교는 이 세 믿음의 기둥 위에 얹혀 있다. 

기둥이 흔들리면 지붕이 따라 들썩이고 심하면 무너져 내릴 수 있다.

우리는 미국·중국·일본의 현재 의도와 그들 머릿속 미래 구도(構圖)를 손금 보듯 들여다보고 있는 것일까.  

얼마 전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식민지 시대로부터 임진왜란(159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고난의 시대 한·중 동반자 관계'를 강조하는 '강의 외교'로 서울을 쓸고 갔다. 

'중국이 핵우산을 펼쳐서라도 북한 핵을 저지하겠다'고 인사치레로도 한마디 건네지 않았다. 

그러자 우리 일각에선 병자호란(1636년)을 거론하며 중국의 속 빈 연설 외교를 경계했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이 충돌한 진풍경(珍風景)이 벌어졌다.

일본 아베 총리는 한 번 더 어깃장을 놨다. 

시 주석 방한 불과 몇 시간 전 북한에 대한 제재를 일부 해제하겠다고 발표하더니 이번에는 "한반도에 비상사태가 발생하더라도

일본이 양해하지 않으면 주일(駐日)미군은 한국을 구원(救援)하러 갈 수 없다"고 했다. 집단적 자위권을 행사하는 명분의 

하나로 한반도 비상사태 때 미군 지원을 들고나왔던 게 언제였느냐는 투다. '오는 11월 일·중 정상회담을 갖고 싶다'는 희망도 

비췄다. 한국을 돌아 북한과 한국을 건너뛰어 중국과 상대하겠다는 것이다. 뜻대로 될지 두고 볼 일이다.

미국 메시지는 알쏭달쏭하다. 

미국 국무장관은 일본과 북한의 교섭은 투명해야 하고 아베 총리가 방북(訪北)할 경우 사전에 미국과 충분한 협의가 있어야 한다고 일본에 주의를 줬다. 미국 정부 안팎 외교 전문가들은 중국이 한국에 접근하는 이유는 한·미 동맹이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한·미 동맹이 약화되면 중국은 몇 백년 전처럼 한국을 중국의 변방(邊方) 국가로 취급할 것이라는 이야기다. 

국제관계 비중의 우선순위를 혼동하지 말라는 한국을 향한 경고성 귀띔이다.

대한민국을 둘러싼 바다는 세월호를 삼킨 맹골수도 물살보다 거칠다. 배의 중심이 위로 뜨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안전 항해의 출발은 지금 항해하는 이 바다를 확실히 모른다는 걸 아는 것이다. 우리는 스스로가 생각하는 것만큼 일본과 

중국과 미국에 빠삭한 처지가 아니다. 진시황(秦始皇)이 우리 속담에 나오고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 이름을 우리만큼 많이 

아는 국민은 세계에 없다. 고난과 역경(逆境)의 역사가 물려준 상식이다.

상식만으론 다른 국가의 의도와 행동을 정확히 읽고 예측할 수는 없다. 상식이 고정관념으로 바뀌면 오히려 오판(誤判)을 

낳는다. 세계 대학의 일본 정치에 대한 표준적 교과서는 한국 학자가 아니라 미국 학자가 쓴 책이고, 노동문제는 영국 학자가 

쓴 책이다. 중국 관계도 마찬가지다.


25년 전 도쿄 헌책방 거리에서 '외국인이 쓴 일본론 명저(名著)'라는

책과 부딪혔다. 

부끄러운 이야기지만 한국 초대 대통령 이승만이 저술한 

'Japan Inside Out'은 그 자리에서 처음 만났다. 

1940년에 원고를 완성해 1941년 출판된 책이다. 프란체스카 부인이 

원고를 세 번이나 타이핑하느라 손가락이 짓물렀다고 한다.

이승만은 '미국이 지금 아시아에서 일본 침략을 먼 곳 산불인 양 

구경하지만 머지않아 불기운으로 얼굴이 뜨거워질 것'이라며 

'일본이 곧 남방(南方)으로 창끝을 돌려 미국과 충돌할 것'이라고 

예견(豫見)했다. 

몇 달 후 1941년 12월 7일 일본은 진주만을 기습했다. 

이승만의 예언대로 맨 처음 필리핀이 일본 손에 떨어졌다. 

그러자 미국은 이 책을 한꺼번에 사들여 루스 베네딕트의 

'국화와 칼'이란 책과 함께 대일(對日)전쟁 요원 교육 교재로 채택했다.

1948년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승만은 1954년 3월 주미(駐美) 

한국 대사에게 전문(電文)을 보냈다. 

'미국이 언젠가 일본을 위해 한국을 희생시킬 위험이 있다는 걸 항상 

잊지 마라'고 했다. 

그는 또 1953년 6월 17일 주한 미국 대사에게 "한·미 안보조약이 

오늘은 공산주의자로부터, 내일은 일본 위협으로부터 한국을 

보호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한국과 중국이 요즘처럼 서로를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라고 

부르는 시대였더라면 냉철한 전략가 이승만이 중국과 관련해서도 

뼈 있는 한마디 교훈을 빠뜨리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을 '의심하면서도 미국과 협력'하고 일본을 '경계하면서도 일본과 대화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이승만이라면 

오늘 동북아를 어떻게 헤쳐갔을까. 일본은 몇 년 동안 외면하며 방치하고 미국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고 

중국 연설 외교에 귀를 솔깃해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