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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사일언] 전설도 결국엔 픽션

바람아님 2014. 8. 13. 19:49

(출처-조선일보 2006.09.04 민병준 여행작가)


전설도 결국엔 픽션한강의 발원지는 전통적으로 평창 오대산의 우통수로 알려져 왔으나, 
1980년대 중반 실측한 결과 태백 금대봉 기슭의 검룡소라는 사실이 새롭게 밝혀졌다. 
한강의 새로운 발원지로 등극한 검룡소(儉龍沼)를 1990년 대 초반에 처음 찾아갔다. 
주변 숲은 건강했고 용이 숨어 있을 듯한 검푸른 못에선 제법 많은 양의 물이 솟아올랐다.
세월 따라 깊게 파인 석회암 바위를 흘러내리는 와폭도 과연 한강의 발원지다웠다.

안내판엔 ‘황해에 살던 이무기가 용이 되기 위해 한강을 거슬러 오르다 
이곳에 이르러 더 이상 올라갈 곳이 없음을 알고 머물렀다는 전설이 전한다’고 적혀 있었다. 
이후 검룡소(儉龍沼)에서 용이 되는 수업을 쌓던 이무기가 물을 마시러 오는 소를 
잡아먹자 화가 난 마을 사람들이 검룡소를 메워 버렸고, 이무기는 결국 용이 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검룡소가 한강의 발원지다운 이름에 건강한 숲과 분위기, 그리고 사연 깊은 전설까지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안도했다. 
조선시대 최고의 샘물로 꼽히던 우통수의 명성을 이어받으려면 이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민병준 여행작가 2000년 대 초반에 태백문화원 관계자를 만났다. 화제는 자연스레 검룡소로 옮겨갔다. 
그러나 그분의 대답은 청천벽력이었다. “검룡소(儉龍沼) 전설은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국립지리원에서 그곳을 한강 발원지로 공식 인정하자, 산판 작업 때문에 묻혀 있던 못을 복원하고 
검룡소(儉龍沼)라는 이름과 전설을 지었다는 것이다. 충격은 컸다. 

그나마 검룡소(儉龍沼)의 작명과 전설이 정말 그럴 듯하다는 데에 위안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하기야 따지고 보면 한 고을의 자연전설이란 게 어느 시기에 누군가가 지어낸 허구가 아니던가.

(민병준·여행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