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월드리포트] 한국도 '잃어버린 20년?'..경험자 일본의 훈수

바람아님 2014. 9. 1. 11:45
"알 수 없는 기세가 있던 한국이 어딘가 이상하다. 정치는 표류하고 삼성 같은 기업의 실적도 흔들린다. 한국의 이상 기류가 깊어지고 있다"

26일 니혼게이자신문의 한국 관련 기사 마지막 문장입니다.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1991~2011년 초장기불황)'을 답습할 가능성이 엿보인다는 내용의 기획시리즈 1편입니다. 일본이 늘 부러워하는 '한국 특유의 활력'이 사그라지면서, 일본 장기불황 초입의 혼란과 무기력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잃어버린 20년' 논란이 뜨겁습니다.

최경환 경제팀이나 보수 성향의 신문들은, 한국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원화 상승과 일본보다 낮은 물가 등을 친절하게 그래프로 그려가며 '디플레' 우려를 전하고 있습니다. 80년대 중반 플라자합의(달러화 가치 절하, 엔·마르크 절상) 이후 환율과 금리 움직임으로, 일본이 '잃어버린 20년'을 맞이했다는 부연 설명도 붙었습니다. 하지만, 대개 이른바 경제활성화 법안 처리를 요구하면서 국회와 여론을 압박할 때 자주 등장하는 논리들입니다.

반면 진보 성향 신문들은 최경환 경제팀의 '경제위기론'이 과장돼 있다고 반박합니다. 한국 경제의 장기전망은 오히려 호전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진단도 첨부됩니다. 최경환 경제팀이 정치적 목적에서 위기를 과장하고 있다는 비판입니다. 실제 최경환 장관의 페이스북에는 '초이노믹스(자신의 경제정책을 스스로 이렇게 부르는군요)에 해외투자자 후끈'이라며 자화자찬을 늘어놓기도 했으니, 이중잣대라는 비판이 나올 만도 합니다.

'잃어버린 20년' 논란이 뜨겁기는 한데, 한국에서의 논의는 뭔가 수상합니다. 경제 논의를 가장한 '정치투쟁'의 양상입니다. 냉정한 진단과 해법을 찾는 논의라기보다는, 어떤 주장이 제기되면 그 정치적 의도를 분석하고 이념적 입장에 따른 논지를 펴는 식입니다. 사실 최근 한국의 거의 모든 논의가 이런 경향을 보입니다만...

앞서 니혼게이자이 신문, 아니 조금 더 넓게 '잃어버린 20년'을 먼저 경험한 일본의 시각을 참고하면, 우리를 비춰보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니혼게이자이 기사의 몇 구절입니다.

"박 대통령은 '얼음여왕' 이미지가 더 강해져, 주변은 말 한마디에 귀를 쫑긋 세운 채 벌벌 떤다."

"국회는 공전되고, 이념 갈등은 메울 수 없는 간극을 보이고 있다."

"'명량'의 흥행은, 용기와 지력으로 위기를 극복한 리더십을 열망하기 때문이다."

"일본의 장기 불황은 정치의 마비가 큰 원인이었다는 점을 박 대통령은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이처럼 일본은, 한국 특유의 활력이 사라지는 근본 이유를 '리더십의 부재'에서 찾고 있습니다. '경제지표의 악화'보다 '리더십의 부재', '좁혀지지 않는 사회갈등'이 한국의 이상 기류를 심화시키고 있다는 겁니다. 모든 논의가 정치 투쟁, 정치 갈등으로 이어지는 것도 심하다 싶은데(일본은 정반대로 갈등 회피적인 경향이 강하니까, 한국 상황이 더 놀라운 모양입니다) 정작 정치적 리더십이 이런 갈등을 전혀 해소하지 못하는 상황이 일본의 '잃어버린 20년' 초입과 닮아 있다고 진단합니다.

환율과 물가, 고령화와 양극화, 잠재성장률 저하 등등 난제가 쌓여가는 것 자체도 문제지만, 상황이 이런데도 해법을 제시하고 국민의 기를 살리는 정치적 리더십이 보이지 않는 사실이 진짜 문제라는 게 일본 언론의 평가입니다.

물론 일본 언론의 한국 비판에는 일정한 '편견'이 있습니다. 한일관계 냉각의 책임이 한국 정부에 있다는 인식이 강하기 때문에,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폄하와 비난이 은연 중에 깔려 있습니다. 이런 편견을 감안해서 읽더라도, '깊어가는 보혁 갈등'과 '정치 실종', 그리고 이를 해소할 '리더십의 부재'라는 일본의 지적은, 불쾌하지만 곱씹어 들어야 할 훈수임에 틀림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