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아니 땐 굴뚝에서 연기 나랴?.. 불신의 늪에 빠진 대한민국

바람아님 2014. 9. 3. 10:47
온갖 요사(妖邪)스러운 말, 잡스러운 언어가 어지럽게 춤춘다. 혼인도 하지 아니한 여성 대통령의 사생활 이야기는 급기야 국제적인 화제로 떠올랐다. 온갖 수단을 써서 불을 꺼보지만, 역부족이다. 진화(鎭火) 방법이 틀렸나?

유언비어는 생명체다. 잡초다. 그 끈질긴 생명력은 '유언비어가 아닌 것'보다 훨씬 강하고 스토리는 진하다. 왜? 알고 싶은데 알려주지 않으니 바닥에서 모락모락 피어오른 것이다. 노을처럼 안개처럼 색깔도 섹시하다. 독버섯이 딱 그렇다. 그 생태(生態)를 모르고서 그 괴물(怪物)을 대적할 수는 없다.

인터넷 뒤지니 "유언비어가 사자성어처럼 원래 있는 말인가요? 유비통신이란 유행어에서 나온 것 아니에요?"라는 질문부터 '유언비어의 기능'이란 대학생 리포트 등 눈길 끄는 글들이 많다. 질문에 대답, "거꾸로 유언비어 숙어에서 유비통신이란 유행어가 생겼답니다."



치킨게임과도 같았던 가수 나훈아의 정면돌파에서 청와대는 무엇을 배워야 하려나. 열린 시스템과 정직함 말고 유언비어의 불길을 잡을 방법은 없다. 2008년 1월25일 나훈아의 기자회견을 생중계로 지켜본 이들은 "그가 정말로 바지를 벗을까봐 몹시 당혹스러웠다"고 말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유언비어의 기능은? 알고자 하는 욕구, 그 식욕과도 같은 본능의 해소다. 그 욕구는 인간의 권리이기도 할 것이다. 그래서 유언비어의 기능은 '또 하나의 소통(疏通)'인 것이다. 그 리포트는, 궁금했지만, 그다지 만족스러운 답을 담고 있지는 않았다. 유언비어는 커뮤니케이션 관련 학과 학생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제목이다.

희대(稀代)의 유언비어 주인공 중 한 사람인 가수 나훈아의 해법(解法)은 절묘한 정면돌파였다. 치킨게임과도 같은 정면충돌을 자청한 두둑한 뱃심은 아마 '꿀릴 게 없다'는 자신감에서 나온 것이리라. 당시 상황을 다룬 방송 프로그램 소개 글이다.

잠적, 와병, 야쿠자 폭행, 급기야 신체 훼손설까지 부풀려진 나훈아 괴담…. 결국 그를 기자회견장으로 이끌어냈다. 회견장에는 600명이 넘는 취재진이 몰렸다. 40분이 넘도록 생중계되며 해외 언론에까지 보도되는 해프닝으로 일단락됐다. 국민가수를 기자회견 단상에 올려 하의 탈의 직전까지 가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도대체 소문은 어디에서부터….



세월호 참사 이후 '유병언은 살아 있다' 등 온갖 유언비어가 난무한다. 진도 팽목항 앞 남해 바다를 다 메우고도 남을 엄청난 유언비어들은 불신의 이불이 되어 세상을 덮는다. '정치'는 그 불신의 불쏘시개를 계속 들이민다.
세계일보 자료사진일도양단(一刀兩斷), 단칼에 두 동강을 내는 '나훈아 해법' 같은 솔로몬의 꾀가 어디 흔할까? 천안함 참사도 그렇더니, 세월호 참사를 부른 기독교 구원파 관련 요사스러운 소문은 바다를 다 채우고도 남겠다. 그중 하나. '유병언이 그렇게 얘기했다더군. 응, 그 시체 내 것 맞아. 이제 나 죽은 거다, 모두 알았지!'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한가운데서 동아일보 기자로 그 처절함을 취재했던 고(故) 김영택 박사에게서 들은 얘기는 유언비어라는 말이 정치적으로 악용(惡用)되거나 오염(汚染)돼 '빗나간 권력의 친구'가 된 경우다.

사실을 전하는 말글에서 과장이나 비유법 등 해석의 차이를 부를 수 있는 대목을 짚고, 거기에 초점을 맞춰 전부를 '유언비어'로 규정하는 것과 같은 수법을 말한다. 치졸하게 말꼬리 잡는 싸움꾼과도 흡사하다고나 할까. 그중에서도 "그래서 대검으로 젖꼭지를 후벼 잘라 내는 것을 니가 본 적이 있어?"라고 심문자(審問者)가 했다는 말,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진시황의 중국 땅 첫 통일 국가인 진(秦)에 이어 기원전 200년쯤 생긴 한(漢)나라의 문헌에도 등장한다니 이 말 유언비어(流言蜚語)는 나이가 꽤 많은 녀석이다. 유언비어(流言飛語)라고도 쓴다. 사전은 '아무 근거 없이 널리 퍼진 소문'이라 풀었다. 한자를 풀자면 흘러 다니고[流] 날아다니는[蜚, 飛] 말[言語]이다.



글자 비(飛)의 옛글자 자취. 비행기의 비(飛)자는 원래 새의 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었다. 그 모양의 변화를 살펴보자. 글자 진화의 오랜 역사가 저 사이에 담겼다. 문자학자 진태하 박사의 책에서 발췌했다.요즘 폭발적인 '인기'인 이 말은 우리 역사에서 그리 흔하게 쓰이지는 않았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성종, 중종, 숙종 때 기록에서 각각 한 번씩 이 말이 검색된다. 물론 실록에는 그 비슷한 와언(訛言)·요언(妖言)·난언(亂言)·변환언어(變幻言語) 등의 여러 개념이 나온다.

비(蜚)는 바퀴벌레 또는 메뚜기다. 날아다닌다. 원래 새의 나는 모습을 갈무리한 글자인 비(非)와 벌레[충(蟲)]를 뜻하는 글자[충(?)]를 합한 것이다. 비(飛)는 새의 나는 모양 그림이 도안(圖案·design)의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글자다. 비(蜚)와 비(飛)는 여기서 같은 뜻이다.

영어는 '근거 없는 소문(groundless rumor)' 또는 '허위보도(canard)' 정도의 뜻이다. 그중 '포도덩굴'이라는 뜻의 그레이프바인(grapevine)이 이 말과 비슷한 뜻으로 쓰이는 것을 눈여겨 볼 만하다.

미국 남북전쟁 때 전보(電報)를 주고받기 위해 세웠던 전봇대에 전선(前線)이 뒤엉킨 모습이 딱 포도덩굴 같았다는 것과 그 전보를 통한 상황 보고의 내용이 믿을 만하지 않았다는 것의 복합 이미지가 그 말의 속뜻이겠다. 강준만이 쓴 '교양영어사전'에 소개된 내용이다. 1960년대 미국 히트곡 '풍문으로 들었소'(Heard It Through the Grapevine)에도 쓰였다.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나랴?'라는 속담은 유언비어와 연관해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나훈아 예가 아니더라도, 열린 시스템과 정직함이 정면돌파의 방법임을 모를 사람은 없다. 귓속말, 뒷담화, 사바사바 등 당당하지 못한 해법을 똑똑하다, 요령 좋다고 여기고 지내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그러나 끝내야 한다. 유언비어의 그 칼끝이 결국 향할 곳, 어디인지 아는가?

강상헌 언론인·우리글진흥원장

청수기대랑(淸水幾大郞)이라는 일본인이 1937년 지은 '유언비어의 사회학'이라는 책, 군벌(軍閥)이 실권을 장악하고 전쟁을 일으키고자 '국민총동원' 정책을 펴고 언론을 억압하던 때여서 더 관심을 끌었다고 한다. 유언비어의 발생과 구조, 근거와 대책 등을 다루었다.

1977년 한국어 번역본이 나왔다. 다사다난의 시기, 유언비어라는 말 자체가 화제의 대상이 되고 '유비통신'이라는 소문의 무더기는 오히려 정보의 장터로 기능하기도 했다. 풍문(風聞)으로 등장해 (일부) 사실로 판명되는 시간의 수레바퀴는 여전하다. 불신의 세상을 떠받치고 있는 구름 담요인가. 지금도 '찌라시'라는 요물이 가끔 재주 피운다.

유언비어라는 말을 점점 더 자주 듣고 본다.

그때마다 글줄 짓는 이들은 이 책(의 한 대목)을 언급한다. 오래전 읽은 그 책의 기억을 떠올리면, 이 필자들이 그 책을 다 읽은 것 같지는 않다.

엄혹한 독재의 시기에 가슴 졸이며 공감했던 그 내용, '자유세상' 되어 읽으니 김빠진 맥주 맛이어서 영 생뚱맞았다. 기억이 새롭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