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만물상] 외국인이 본 한국 장례식

바람아님 2014. 9. 3. 18:07

(출처-조선일보 2014.09.03 김태익 논설위원)


2년 전쯤 경기도 평촌의 종합병원에 있는 장례식장에 문상(問喪)을 갔다. 
저녁 모임이 늦어지는 바람에 밤 열두시가 넘어서야 도착했다. 식장은 한산했다. 
영정을 모신 방에서 유족으로 보이는 여성 셋이 앉아 돈을 세고 있었다. 바닥에도 돈이 흩어져 있었다. 
그날 들어온 부조금을 정리하는 모양이었다. 때로는 웃기도 했다. 
돌아가신 분이 장수하셔서 호상(好喪)이었다고는 해도 보기에 민망했다. 
그들이 당황하며 서둘러 자리를 수습하는 사이 절만 하고 바로 빠져나왔다.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상조업에 종사하는 500명을 대상으로 '상갓집 꼴불견'을 조사했다. 
'밤새워준다고 집에도 가지 않고 술 마시고 주사 부리는 사람'이 첫손에 꼽혔다. 
'장례식장에서 유산·부조금 같은 돈 문제로 다투는 유족'  '노출이 심한 옷을 입은 문상객' 
'오랜만에 친지 만났다고 잔칫집인 듯 웃고 떠드는 사람' 같은 것들이 뒤를 이었다. 
몇 년 전 디자이너 앙드레김이 작고했을 때 어느 연예인은 해골 무늬 스카프를 하고 나타나 구설에 올랐다.

[만물상] 외국인이 본 한국 장례식
▶서울에 사는 한 일본인 주부는 병원과 장례식장이 한 공간에 있는 것을 우리 장례문화의 기이한 풍경 중 하나로 꼽았다. 
사람을 살리려는 곳과 죽은 이를 모시는 곳이 어떻게 붙어있을 수 있느냐는 것이다. 
병원에서 죽음을 맞는 사람이 압도적으로 많으니 장례식장이 붙어있으면 편리하긴 하다. 
그러나 이는 고인(故人)보다는 산 사람 생각을 앞세운 것이다.

▶오산대에 재직하는 아일랜드인 교수가 어제 본지에 추모는 뒷전인 한국의 장례식장을 본 충격을 얘기했다. 
돌아가신 분이 누군지는 관심 없고 유족 눈도장 찍으러 온 사람들로 북적대는 모습, 
사람들이 5만~10만원씩 현금을 헤아려 흰 봉투에 넣는 풍경, 
힘있는 사람 이름 쓴 리본을 달고 즐비하게 늘어선 조화들… 
그는 화장장에서 여러 유족이 섞여 번호표를 받고 순서 기다리며 북적이는 모습을 보고 "꼭 패스트푸드 식당 같았다"고 했다.

▶원로 불문학자 정명환 교수는 에세이집 '인상과 편견'에서 희망하는 장례식의 모습을 이렇게 그렸다. 
"울긋불긋한 제물(祭物)은 싫다. 조사(弔辭)도 독경(讀經)도 싫다. 굳이 고별 의식을 해야 한다면 
브람스의 '클라리넷 5중주' 제2악장, 시벨리우스 '투오넬라의 백조', 엘가의 '첼로 협주곡'제3악장 가운데 하나를 
조문객들에게 들려주면 어떨까. 나의 삶을 도와준 사람들에게 내가 마지막으로 바치는 감사의 표시로." 
간소하고 경건한 가운데 마음을 다해 가신 분을 기리는 장례 문화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