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최유식의 태평로] 거대 중국 市場의 숨은 함정

바람아님 2014. 9. 5. 10:10

(출처-조선일보 2014.09.04 최유식 디지털뉴스부장)


최유식 디지털뉴스부장2000년대 초반, 미국의 한 유명 경영대학원이 중국 쓰촨(四川)성의 가전업체 창훙(長虹)에 대한 
사례 연구를 진행했다. 낙후한 서부 지역의 이 업체가 소니·필립스 같은 쟁쟁한 글로벌 기업을 제치고 
중국 TV 시장을 석권한 요인을 분석하는 연구였다.

1980년대 중국 TV 시장은 외국산 제품의 독무대였다. 
중국 업체들이 해외에서 생산 라인을 도입해 자체적으로 TV를 생산했지만, 품질 면에서 수입품과 
격차가 컸다. 하지만 중국 업체들이 외국산을 누르고 내수 시장을 장악하는 데는 채 10년이 걸리지 
않았다.

창훙은 그중 선두 업체였다. 쓰촨성 청두(成都) 부근 중소 도시 몐양(綿陽)에 본사를 둔 창훙은 1992년 
쓰촨성 TV 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하면서 중국 내 1위 TV 업체로 부상했다. 2년 뒤에는 당시로서는 대형인 24인치 TV를 
개발해 베이징과 상하이 등 중국 대도시로 진출했다. 창훙은 그 후 2~3년간 돌풍을 일으켰다. 1997년에는 중국 TV 시장 
점유율이 35%로 올라갔다. 외국계 기업들은 속절없이 중국 시장에서 밀려났다.

창훙의 성공 요인은 수입 TV의 절반 수준인 싼 가격에도 제품 완성도가 괜찮았다는 점이다. 계획경제 시절 군수업체였던 
창훙은 값싸고 풍부한 기술 인력을 보유하고 있었다. 처음엔 해외에서 TV 생산 라인을 들여왔지만 내부 기술진이 이 라인을 
분석해 자체적으로 생산 라인을 구축했다. 카피(복제)를 통해 기술력을 키우고 가격 경쟁력을 확보한 것이다.

창훙은 2000년대 들어 세계 TV 시장이 CRT(브라운관)에서 평면으로 옮아가는 추세에 적응하지 못하고 몰락의 길을 걸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국 TV 시장을 휩쓴 창훙의 신화는 아직도 많은 외국 기업인의 뇌리에 남아 있다.

중국 시장을 처음 접하는 외국 업체들은 쉽게 생각한다. 13억 인구의 거대 시장인데 중국 업체들의 규모나 기술력이 형편없어 
보이는 것이다. 그래서 쉽게 시장을 장악할 것이라는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시장 속으로 들어가 본 뒤에야 '함정'에 빠졌음을 
깨닫는다. 어느새 기술을 베낀 중국 업체들이 가격 경쟁력과 지역 유통망의 우위를 바탕으로 무섭게 추격해오는 것이다. 
적잖은 유럽·일본 업체가 이런 함정을 경험했고, 한국의 삼성·LG전자도 예외가 아니었다. 외국 기업들이 비싼 수업료를 내면서
깨닫는 중요한 사실 중 하나는 프리미엄 시장에서 겨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아래로 내려가면 이미 만만찮은 역량을 축적한 중국 업체를 버텨내기가 쉽지 않다.

삼성전자가 2분기 영업이익이 크게 떨어진 데 이어, 3분기에는 실적이 더 악화될 전망이라고 한다. 
삼성전자의 실적이 곤두박질치게 된 주 이유는 중국 시장의 부진이다. 2년 전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중국 휴대폰 시장에서 1위에
올라선 삼성전자는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에 그동안의 프리미엄 전략을 수정했다. 
점유율 확대를 위해 10만~20만원짜리 중·저가 휴대폰을 중국 시장에 대거 투입한 것이다.

당장 지난해는 좋은 실적을 냈다. 하지만 올해는 반격에 나선 중국 업체들과 치열한 경쟁을 벌이느라 막대한 마케팅 비용을 
쏟아부어야 했고, 그 와중에 수익성이 크게 떨어진 것이다. '중국 시장 1위'라는 달콤한 유혹의 대가는 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