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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광장/신기욱]한일역사전쟁, 더 치밀한 전략 필요하다

바람아님 2014. 9. 6. 14:08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

 

한일 간 역사전쟁이 국제사회로 확전되고 있다. 중국이 안중근 의사 기념관을 건립하고 시진핑 국가주석이 한국의 입장을 지지하는 가운데 일본 아베 신조 정부는 고노 담화 검증 과정에서 담화 수정 자제를 요청한 미국의 입장은 수용하면서도 담화의 내용이 한일 간 정치적 타협의 산물임을 강조해 한국을 무시하는 이중적 전략을 택했다. 미국은 역사 갈등으로 한미일 공조가 약화되는 데에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해외 한인 커뮤니티 활동도 활발해지고 있다. 2007년 미 의회의 위안부 결의안을 채택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던 재미 한인들은 여러 지역에서 소녀상 건립, 동해 병기 표기안을 추진하고 있으며 일본 기업에 대한 강제 징용 배상 소송도 미국에서 진행 중이다. 일본 역시 이에 맞서 반대 로비뿐 아니라 워싱턴 내 주요 싱크탱크를 중심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다. 한국도 국제사회에서 역사전쟁을 하려면 보다 정교한 논리 개발과 맞춤형 전략을 가다듬어야 한다.

먼저 위안부 문제는 보편적 인권 문제로 이슈화하고 유엔, 국제인권단체 등과 연대해 활동 반경을 넓혀야 한다. 반면 독도는 한국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으므로 영토 분쟁화하려는 일본의 시도에 휘말리지 말고 이것이 영토 문제이기 이전에 역사 문제임을 알려야 한다. 또한 일본이 여러 차례 사과한 점은 인정하되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나 불행한 과거를 부정하는 고위 각료의 발언 등을 통해 나타난 일본의 이중적 행태에 문제의 본질이 있음을 보여줘야 한다.

미국과의 전략대화에서도 의제로 거론해 볼 시점이 되었다. 지금까지 미국은 동북아 과거사는 당사국 간의 일로 관여할 사안이 아니라는 입장을 고수해왔다. 하지만 미국은 동북아 역사 갈등에 전혀 책임이 없다고 할 수 없으며 유럽의 경우 독일의 배상 문제 등에서 중재자로서 역사 화해를 도왔던 경험과 전례가 있으므로 한일 역사 화해를 위해서도 역할을 하도록 설득할 필요가 있다.

한미일 공조에서도 역사 문제와 다른 외교 안보 사안들을 분리해 투트랙으로 접근하되 역사 갈등에 대한 해결 없이 3국 공조는 언제나 불안정함을 강조하고 중국이 한국과의 역사 공조에 적극적으로 나오고 있고 국내 여론도 이러한 중국의 노력에 호의적인 만큼 미국이 이 문제를 경시하지 말 것을 촉구해야 한다.

또한 과거사 문제는 단기적으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므로 중장기적인 관점에서 정책 과제를 개발해야 하며 다방면에서 지속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 동북아 역사 문제를 주요 미션으로 하고 있는 동북아역사재단뿐 아니라 해외 한국학 연구를 지원하고 있는 국제교류재단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을 적극 활용하되 업무의 중복을 피하고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적절한 역할 분담과 조정이 필요하다.

특히 동북아역사재단의 경우 이제까지의 연구나 활동이 주로 국내나 아시아 지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나 앞으로는 미국 등 더 큰 무대로 활동 폭을 넓혀야 한다. 아직도 국제사회에서는 위안부, 강제 징용, 독도 문제 등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턱없이 부족한 상태이므로 해외 관련 연구소들과 긴밀한 협조체제를 구축해 연구 성과를 알리고 이해를 높이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외교의 강화 역시 시급하다. 아베 정부는 한국에 대해선 소극적인 데 반해 국제사회 특히 미국을 상대로 한 여론전에는 매우 적극적이다. 자칫 한국이 너무 고집스러워서 문제 해결이 어렵다는 인상을 줄 수가 있다. 국제 여론조사를 보면 한국과 중국을 제외하곤 대체로 일본에 우호적이며 국제 여론이 우호적인 한 일본이 구태여 한국에 적극적인 화해의 손길을 내밀 가능성은 더욱 낮아진다.

끝으로 해외 한인 커뮤니티의 활동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예를 들면 재외동포재단이나 국제교류재단 등을 통해 과거사와 관련된 정확하고도 꼭 필요한 자료를 제공해 주고 전문가를 파견해 세미나를 여는 등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하지만 정부가 재외 공관 등을 동원해 일본 정부와 대립하는 인상을 주는 것은 국제사회에서 부정적 이미지를 만들어 낼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한일 간 역사전쟁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으며 그 승패는 결국 국제사회에서의 노력으로 판가름 날지도 모른다. 지나친 피해의식과 한일관계라는 좁은 틀에서 벗어나 한국의 위상에 걸맞은 유연하고 다양한 전략 마련과 시행이 절실하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