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國際·東北亞

슈이트 교수가 본 '북한은 지금'

바람아님 2014. 9. 26. 10:35

[출처; 중앙일보 2014-9-24일자]





























"영어가 쓰인 야구 모자에 미키마우스 가방을 메고 앵그리버드 캐릭터가 그려진 신발을 신고 있더군요."

한국 어린이들의 모습이 아니다. 미국인인 영남대 교양학부 스티븐 슈이트(53) 교수가 평양에서 본 북한 어린이들의 모습이다. 슈이트 교수는 "북한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난 6월 30일부터 7월 7일까지 북한에 다녀왔다. 영국에 본점이 있는 고려여행사 베이징 지점의 1인당 2600달러(약 270만원)짜리 관광상품을 이용해 미국·유럽 관광객 19명과 함께 중국 베이징을 출발해서는 7박8일간 평양과 함흥·원산·금강산·판문점을 돌아왔다. 23일 영남대에서 만난 그는 "사진을 마음껏 찍도록 하는 등 상당히 자유롭게 여행했다"고 말했다. 그의 북한 여행기를 1인칭 시점으로 재구성했다. 슈이트 교수의 상세한 북한 여행기는 블로그 koreanbookends.blogspot.com에 영어로 나와 있다.

평양 공항. 세관원들이 몸이나 짐을 뒤질 것으로 예상했지만 그런일은 없었다. 휴대전화까지 가지고 북한에 들어갔다.

평양 도심에서는 나이키 운동화를 신은 주민을 여럿 봤다. 평양 볼링장에는 'Made in USA'라고 박힌 볼링공이 있었다. 볼링장과 가까운 '주체사상탑' 부근에 미군이 북한 주민을 고문하는 그림이 내걸려 있던 건 묘한 아이러니였다.

지하철과 일반 철도가 함께 있는 평양역 주변은 서울 명동과 중심가다. 역 주변 교차로에는 대형 맥주집이 있다. 400㏄ 한잔에 50센트(약 500원)였다. 평양역 인근 광장이 대형 옥외 동영상 전광판에서는 북한 선전 영상 두 편이 번갈아 상영됐다.

평양 지하철에선 젊은 남성으로부터 자리를 양보받았다. 가이드를 통해 "할아버지 앉으시라"고 했다. 50대이지만 은발이어서 머리과 턱수염이 하얀 나를 할아버지라고 생각했나보다.

숙소는 양강도 호텔이었다. 로비에서 무선인터넷이 잡혔다. 한국의 아내에게 안부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남성 1명과 여성 1명이 늘 감시하듯 가까이 있었지만,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원산농업대학 여대생들을 하나 같이 흰 저고리에 검은 치마를 입었지만 나름대로 멋을 부렸다. 하이힐을 신었고, 버버리 핸드백을 든 여학생도 있었다. 원산 도심에서 가까운 한 해변가에는 조개를 구워먹는 가족단위 북한 캠핑족을 목격했다. 장작에 불을 붙여 입으로 불어가며 조개를 구웠다.

금강산과 비무장지대(DMZ)에서는 북한군과 사진·동영상을 찍을 수 있었다. 촬영을 해주는 값으로 40달러를 지불해야 한다.

화려한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도심을 살짝 벗어나면 깡마른 농부와 힘없이 축 늘어진 가축들이 보였다. 관광객들이 묵는 고급 호텔도 변기에 물을 내리는 장치가 없었다. 금강산 호텔은 미리 욕조에 떠다놓은 물을 바가지로 부어 변기 물을 내려야 했다. 변기 앞 벽엔 이런 글이 쓰여 있었다. '물을 꼭 칩시다'

평양 등 북한 도시 어디에서도 김정은의 동상이나 대형 초상화는 볼 수 없었다. 김일성·김정일은 눈에 띄었지만 김정은은 아니었다.

최근 북한에서는 전신주를 타고 올라가 전선을 잘라가는 도둑이 기승을 부린다고 한다. 절도범을 막기 위해 북한은 전신주 위쪽에 도둑이 올라갈 수 없도록 가시 같은 것이 돋은 플라스틱 판을 감아뒀다.

8일간 북한을 돌아보고 출국하려 다시 평양 공항으로 왔다. 짐을 뒤지고 촬영한 사진 파일을 검사할 것으로 예상하지만 그런 것은 없었다. 환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관광으로 돈을 벌겠다는 북한의 의도를 보여주는 듯했다.

슈이트 교수의 상세한 북한 여행기는 블로그 koreanbookends.blogspot.com에 영어로 나와 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사진=스티븐 슈이트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