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김대중 칼럼] 우리는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바람아님 2014. 11. 11. 09:41

(출처-조선일보 2014.11.11 김대중 고문)

反對와 理念으로 벽을 쌓고 혁명과 독재 공공연히 바라며
조정·타협 대신 이기심 매달려 민주·자본주의 부작용만 연출
철 지난 싸움에 몰두하는 현실… 우리의 내일은 어떻게 할 건가

김대중 고문정치가 지리멸렬이고 경제가 가라앉으면서 사회 각층의 이기심과 비리가 극으로 치닫는 상황이 되자 
일각에서 과격한 사고(思考)가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독재자가 그립다" "혁명이라도 나야" 
"강력한 리더십이 보고 싶다" 등 복고적 향수가 그것이다. 
심지어 '파괴의 리더십'이란 말까지 등장했다. 이런 상황을 반영하듯 국가 사범 또는 사회적 범죄에 
대한 형벌 의식도 강해져 살인죄나 국가 반역죄 등이 너무 쉽게 언론에 등장하고 있다.

왜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일까? 
한마디로 지금 우리나라에는 '되는 일'이 없다. 
하나의 견해가 제시되면 무작정 '반대(反對)'가 길을 막고, 또 다른 정책이 등장하면 이념적 장벽이 
에워싼다. 거의 공식적이다. 
어떤 사려(思慮)와 검토를 거치기 전에 반대부터 들고 나온다. 
국가 현안에 대한 중대 결정은 반대 세력에 막혀 한 발도 못 나간다. 
대부분의 정책이 시의(時宜)를 놓쳐 '여름옷'을 디자인했는데 겨울이 돼서야 시장에 내놓게 되는 꼴이다.

1년 가까이 세월호에 막혀 수많은 경제 시책이 사장(死藏)되더니 개헌, 공무원연금 개혁, 군(軍) 작전권 전환 연기, 
무상 급식 및 보육 문제로 또 한바탕의 전쟁이 예고되고 있다.
거기에 방위산업을 둘러싼 비리를 필두로 사회 각 계층에 곪아 있던 여러 고질적·구조적 부정부패가 우리 사회를 무겁게 
가라앉히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분명 내리막길을 가고 있다. 
바닥이 어딘지는 아직 모른다.

그래서인지 21세기 민주(民主)대천지에서 사람들은 혁명을 얘기하고, 독재자를 그리워(?)하며, 파괴의 리더십을 거론한다. 
그러다가 민주주의를 탓하며 의회주의를 개탄한다. 
개헌이 거론되는 배경도 따지고 보면 현 상황, 현 시스템에 대한 거부반응의 일환이다. 
홍준표 경남지사의 무상 급식 지원 중단이 사회의 이목을 끌고 있는 것도 무엇이 해답인 줄 알면서도 몸을 사리고 
뒤로 빠지는 정치권의 무기력한 포퓰리즘에 대한 옐로 카드로 봐야 한다.

우리 사회는 지금 인류가 고안해낸 차선(次善)의 제도라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또는 시장경제의 폐해에 시달리고 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부정적 요인이 누적된 가운데 그 부작용에 노출되고 있는 것이다. 
민주주의란 원래 비용이 드는 제도다. 
자유가 있는 대신 책임이 있고, 권리가 있는 대신 의무가 있다. 
다수를 잘살게 하지만 대신 소수를 가난하게 만들기도 한다. 
다수의 동의를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시간이라는 비용이 불가피하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그 제도의 장점보다 단점, 플러스 면보다 마이너스 면에 목덜미를 잡혀 있다.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이면 그 어떤 합리적 조정이나 타협이나 양보도 발로 차버리는 이기적 투쟁에 휘말려 있다. 
여기엔 민주 제도의 장점이라는 다양성, 배려, 공동선(善) 의식이 존재할 틈이 없다.

이 같은 갈등과 대립은 산업화와 민주화를 투쟁적 관계로만 보는 인식에서 비롯한다. 
서구는 산업화를 이루어 나가면서 민주화를 그 위에 얹었다. 
그것을 '선(先)산업혁명과 후(後)시민혁명'의 관계로 승화시켰다. 
하지만 우리는 산업화와 민주화를 시대적 선후의 개념으로 보지 않고 평면적·동시적 상황으로 다루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는 충돌이 불가피하다. 
우리는 남들이 다 치르고 난 산업화와 민주화 대립의 끝자락을 붙들고 시대착오적인 놀음에 팔려 있다.

세계는 우리를 이상한 국가로 보고 있다. 
저만큼 성장한 나라라면 그 성장통(痛)을 이미 겪었음 직한데 아직도 그 터널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것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더더욱 우리는 인구 감소, 노령화, 저성장과 침체 등을 눈앞에 두고 있다. 
그런 처지에 남들이 다 겪은 시대병(病)의 후유증에 시달리며 온 국민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어딘가를 향해 
울부짖고 있다면 우리 민족이 너무 퇴행적이지 않은가?

젊은 세대는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 
우리가 그들을 위해 해줄 것은 먹을 것을 주는 것이 아니라 방향을 일러주는 것이다. 
그들에게 세상을 보는 제대로 된 눈동자를 심어주고 시대를 응시할 수 있는 힘을 주는 일이다. 
과거에는 먹을 것이 없어도 사람들의 눈동자가 밝고 의지에 차 있었다. 
지금 젊은 세대의 눈동자를 보라. 그들의 눈동자는 무기력하고 흐려 있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가. 철 지난 싸움에만 몰두하고 있다. 이기심이 판을 치고 있다. 
좌파는 반대를 위한 반대를 일삼고 있고, 
보수·우파는 강력한 리더십이 출현해 반대를 척결하고 일도양단(一刀兩斷) 식으로 나갈 것을 은근히 바라고 있다. 
현재의 지리멸렬이 계속될 때 다수 국민의 마음이 어디로 기울 것인지가 대한민국의 내일을 정할 것이다. 
18세기 프랑스는 시민혁명으로 왕정(王政)을 무너뜨렸으나 개혁 과정의 혼란과 무질서로 다시 나폴레옹 황제의 시대로 
회귀했다. 
선진적 민주화의 표상이라는 독일의 바이마르 헌법은 히틀러라는 독재자를 배출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