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時流談論

[데스크에서] 3년 전 元老 복지학자 예언

바람아님 2014. 11. 14. 15:31

(출처-조선일보 2014.11.14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2011년 '복지 백년대계(百年大計)' 기획 시리즈를 연재할 때였다. 
당시는 2010년 지방선거에서 무상 급식 공약이 등장한 직후로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앞두고 
3무(無) 공약, 반값 등록금 등 무상 복지 공약들이 난무했다. 
한 원로 사회복지학자에게 언제쯤 이 같은 포퓰리즘 무상 복지 공약이 잠잠해질지 묻자 
그는 뜻밖에도 "한 번쯤 혼란을 겪어봐야 가능하다"고 말했다.

무상 복지 공약은 너무 달콤하기 때문에 정치인과 유권자 모두 유혹을 물리치기 어렵고, 
그래서 당분간 공약에 대한 수요와 공급이 일치하기 때문에 늘어날 수밖에 없다는 얘기였다. 
그러나 세금을 더 내지 않고 복지만 키우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재정이 흔들리는 혼란을 체험한 
다음에야 잠잠해질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 학자는 그때까지 얼마나 걸리겠느냐는 질문에 "앞으로 한 10년은 가지 않겠느냐"고 했다. 
나름 설득력이 있는 얘기였지만 차마 "겪어보지 않고는 해법이 없다"는 말을 그대로 기사화할 수는 없었다.

그로부터 3년여 만에 무상 복지에 따른 혼란이 오기 시작했다. 
홍준표 경남지사는 "전국 78개 지방자치단체가 자체 세입(歲入)으로 공무원 월급도 줄 수 없다"며 무상 급식 예산 지원을 
거부했다. 지난 6일에는 전국 시장·군수 180여명이 기초연금과 무상 보육에 들어가는 돈 중 기초자치단체가 부담해야 할 
몫을 부담할 수 없다고 했다. 
같은 날 시·도 교육감들은 내년 누리 과정(3~5세 무상 보육) 어린이집 예산을 2~3개월분만 편성하겠으니 
나머지는 정부가 책임지라고 요구했다. 
이에 대해 최경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방도 어렵지만 중앙 재정도 죽을 지경"이라며 "서로 기준에 따라 지방도 할 것은 
하고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복지 백년대계' 시리즈를 쓸 때도 경제학자와 사회복지학자 등 전문가들은 이구동성으로 
"복지는 경제적 뒷받침이 있어야 가능하다"  "저출산·고령화를 감안해서 복지 대계를 짜야 한다"고 했다. 
무상 복지 공약을 남발한 정치권만 귀담아듣지 않았을 뿐이다.

복지를 늘리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한국은 아직 선진국들보다 복지 비중이 적기 때문에 복지 비용을 더 늘려야 하는 것도 당연하다. 
우리나라의 공공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 대비 9.8%(2013년 기준)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인 
22.2%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하고 있다. 그러나 경제성장과 국가 재정 상황 등을 감안해 하나하나 신중하게 결정하지 
않으면 혼란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이기도 하다.

최근 무상 복지 재정 혼란을 보면서 답답함과 함께 안도감도 들었다
복지제도가 전반적으로 흔들리면서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르기 전에 이 정도에서 혼란을 수습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가 생겼기 때문이다. 이번 사태를 우리 수준에 맞는 복지를 생각하고 차근차근 복지를 확대해 나가는 계기로 삼는다면 
비교적 적은 비용으로 큰 학습 효과를 얻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