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橫設竪設

[분수대] 진실에 목마른 자의 단상

바람아님 2014. 12. 21. 10:20

[출처 중앙일보 2014-12-19일자]

먼 옛날 진실과 거짓이 함께 길을 가다 냇물에서 멱을 감았다. 씻는 둥 마는 둥 한 거짓은 먼저 물에서 나와 진실의 깨끗한 옷을 입고 떠났다. 목욕을 마치고 나온 진실은 거짓의 더러운 옷을 입기 싫어 벌거벗고 있어야 했다. 그때부터 거짓은 자신이 진실이라고 떠들고 다녔고, 진실은 그늘 속에 숨어 있을 수밖에 없었다.

 라퐁텐 우화집에서 읽었을 법한 이야기인데 생각할수록 기막힌 비유 같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진실 게임들이 딱 그렇잖나 말이다. 도처에 진실이라 떠드는 목소리는 넘쳐나는데 진짜 진실은 어디 숨었는지 모르겠다. 진실 같아 한 꺼풀 벗겨보면 거짓의 더러운 때가 각질처럼 일어서고, 진실이라 우겨 한 겹 벗기면 추잡한 악취가 진동을 한다. 조작과 음해, 회유와 협박, 색깔도 다양한데 어디까지가 권력 암투고 어디까지가 세력 견제인지 알 도리가 없다.

 유유상종, 거짓은 떼로 다닌다. 거짓의 동행한테서 비슷한 거짓을 발견하는 건 차라리 익숙한 일이다. 기업 오너 일가의 거짓에 회사 차원의 거짓이 덧칠되고 그 회사 출신 조사관들이 있는 국토교통부의 거짓까지 가세하는 게 전혀 놀랍지 않다. 심지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다른 거짓과 동행하기도 한다. 기업 오너 일가의 갑질 문제에서 난데없이 유력 정치인의 인사 청탁 논란이 삐져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곳곳에서 거짓들이 진실의 소매를 내밀고, 사돈의 팔촌에 동기동창까지 불러 모으다 보면 애초에 찾던 진실은 어둠 속에 꼭꼭 숨어버리고 ‘무늬만 진실’들의 목소리는 더 커지게 된다. 대중의 분노가 폭발하는 시점이다. 라퐁텐은 그래서 이런 말도 했다. “인간은 진실 앞에선 얼음같이 차가워지지만 거짓에 대해선 불처럼 뜨거워진다.”

 대중이 참여한 진실게임은 끝내 법정으로 귀결된다. 정치가 무능할수록 더욱 그렇다. 하지만 진실은 늘 법 위에 있다. 사법기관의 칼날이 언제나 거짓더미에서 진실만을 도려낼 순 없다는 얘기다. 게다가 사법의 칼은 흔히 그리스 역사가 타키투스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휘둘러지곤 한다. “신들은 강한 쪽을 편든다.”

 달리 기댈 방법이 없는 게 안타깝다. 그들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남아공 작가 네이딘 고디머의 말을 가슴에 새기도록 들려주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전부다. “진실이 언제나 아름다운 건 아니다. 아름다운 건 진실에 대한 목마름이다.” 갈증을 달래려 차 한잔 마시며 해본 단상이다.

이훈범 국제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