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핫 이슈

‘국제시장’과 기울어진 운동장

바람아님 2015. 1. 11. 12:09
[중앙선데이 2015-1-11 일자]


영화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돌파한다면 일등공신은 감독 윤제균도, 주연 황정민도 아니다. 방송인 허지웅이다. 그가 한 일간지와의 좌담에서 “(‘국제시장’을 보면) 정말 토가 나온다”고 말하는 순간, 별점 50개를 받은 것보다 훨씬 값진 선전 문구를 따낸 셈이었다. 그의 혹평에 일부 종편과 ‘일베’가 시비를 걸며 논쟁은 에스컬레이터를 탔고, 덩달아 ‘국제시장’의 인기도 탄력을 받았다. 만약 비정규직 문제를 다룬 영화 ‘카트’에 대해 보수 논객 변희재씨가 “역겨워 콧물이 났다”고 했으면 이토록 초라한 성적(81만)으로 막을 내렸을까. 그러니 “허지웅에게 서운하다”란 윤 감독의 말은 큰 결례다. 이제 한국 영화 시장에서 1000만 관객의 전제 조건은 완성도가 아닌, 사회적 논란이다.

허씨만이 ‘국제시장’ 흥행에 불을 지핀 건 아니다.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우익 성감대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긴 있나 보다”고 일조했고, 영화평론가 듀나 역시 “역사를 다루면서 역사에 대한 아무런 생각이 없다”고 했다. 대개 소위 좌파 성향의 평론가들이다. 이들의 논리는 이렇다. “1970, 80년대라면 유신, 전두환 군사정권 시절 아닌가. 엄혹한 시기를 조명하면서 이와 무관한 에피소드만 나온다면 본질적 문제는 외면하는 꼴이다. 결과적으로 독재를 미화하거나 최소한 묵인하게 된다. 역사의식의 부재다.”

야권이 최근 자주 하는 말 가운데 하나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유권자 구성(영남 1059만 명, 호남 414만 명)이나 미디어 환경에서 한국 사회가 보수에 유리하다는 거다. 일견 동의한다. 하지만 정반대의 지형을 구축한 곳이 있으니 바로 문화예술계다. 진보 절대우위다. 문학·미술·공연 등 장르 불문이며 창작자·기획자·평론가 등 가리지 않는다. 실제 통합진보당이나 정의당 당원도 꽤 여럿이다. 기존 것을 타파하고 새로움을 추구하는 게 예술의 속성이기에, 문화계 인사의 진보 성향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결과일지 모른다.

그럼에도 최근 경향은 그 정도를 벗어난 것처럼 보인다. 비근한 예로 드라마나 영화를 한번 보자. 정치인은 무식하며, 검사는 돈만 받아 먹고, 재벌은 연애질만 한다. 상류층이라면 무조건 썩어 있다는 게 기본 설정이요, ‘부자=악(惡), 서민=선(善)’이 공식처럼 굳어져 있다. 여기에 반정부적 트윗을 날리면 바로 ‘개념 연예인’으로 등극하곤 한다. 이런 성향들이 문화계 주류이다 보니 이와 조금 궤를 달리하는 ‘국제시장’에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건 아닐까.

당사자들은 색깔 논쟁이 부담스럽다고 하나 내가 보기에 ‘국제시장’은 분명 우파 영화다. 그것도 꽤 세련되게 만든. 그래서 반갑다. 언제까지 보수의 가치는 80년대 건전 가요나 예비군 훈련장에서 틀어지는 반공영화에 머물러야 하는가. 기울어진 운동장이라면 어디든 균형을 맞추는 게 보기 좋다. 좌와 우가 함께 날아야 함은 문화예술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최민우 정치부문 기자


엄정화 국제시장, 누군가의 희생 이제라도 인정해야
[데일리안 2015-1-10 일자]

엄정화 "국제시장, 누군가의 희생 이제라도 인정해야"
트위터 통해 "많이 울었다" 감상평 남겨

▲ 가수 겸 배우 엄정화.(자료 사진)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가수 겸 배우 엄정화가 영화 ‘국제시장’과 관련, “국제시장, 누군가의 희생, 사랑, 고생은 이제라도 인정하고 감사해야하지 않을까”라고 감상평을 남겼다.

엄정화는 10일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이같이 밝힌 뒤 “전쟁과 배고픔을 겪지 않아 다행이란 생각과 할머니, 할아버지, 엄마, 아빠의 힘겨움이 생각나 많이 울었다”며 “그래도 자식들이 겪지 않아 다행이라는 진심어린 말이 마음 깊이 남습니다”라고 밝혔다.

‘국제시장’은 일부 평론가들의 평이 화제가 되면서 뜬금없이 ‘정치색 짙은 영화’라는 비판에 휩싸였다.

영화평론가인 허지웅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더 이상 아무것도 책임지지 않는 시니어들의 문제가 다뤄져야 마땅한 시점에 아버지 세대의 희생을 강조하는 ‘국제시장’의 등장은 반동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정치평론가 진중권 동양대 교수도 “도대체 영화를 어떻게 만들었길래···극우랑 종편이랑 ‘일베’가 xxx를 하는 건지”라며 “하여튼 우익 성감대를 자극하는 뭔가가 있긴 있나 보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 배우 유아인은 지난 3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당신들 신성으로 영화를 평하는 것은 논지고 대중의 수준으로 그대들을 평하는 것은 무지라니”라며 “냉동실에서 꺼낸 삼복 더위사냥 같은 단어들로 그대들은 적장을 벴다. 시대의 논객인지 노객인지. 여러분은 벴다. 이 나라를 반토막으로”라고 지적했다.

유아인은 이어 “그래 팬심으로 나는 당신들에게 묻고 싶다. 그것이 무엇을 위한 투쟁인지”라면서 “고작 영화 평론이라고? 고작 그 평론에 담긴 이데올로기적 함의는 그 꼴로 끝인 건가"라고 주장했다.

한편, 엄정화는 최근 화제가 된 MBC의 주말예능 무한도전이 기획한 ‘토요일 토요일은 가수다(토토가)’에 출연해 전성기 시절 못지 않은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데일리안 = 스팟뉴스팀]


[토요일에 만난 사람]“아버지 이야기 하고 싶었을 뿐… 결국 진심이 통했네요”

[동아일보 2015-1-10 일자]

영화 ‘국제시장’으로 또 1000만… 윤제균 감독



영화계에서는 1000만 영화를 ‘하늘이 내린 영화’라고 부른다. 그런 점에서 윤 감독은 하늘의 선물을 두 번 받은 셈이다. 그는 “나는 운이 좋다. 기쁨보다 감사하는 마음이 더 크다. 논란까지도 감사하다”고 말했다. 전영한 기자 scoopjyh@donga.com
영화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 돌파 초읽기에 들어갔다. 8일까지 855만 명이 본 이 영화는 이르면 다음 주에 1000만 관객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국제시장’의 1000만 관객이 확실시됨에 따라 윤제균 감독(46)은 ‘해운대’(2009년·1145만 명)와 함께 최초로 1000만 영화 두 편을 낸, ‘쌍천만’ 감독 타이틀도 거머쥐게 됐다.

윤 감독과의 인터뷰는 지난해 12월 ‘국제시장’ 개봉 직전과 이달 7일 두 차례 진행됐다. 그 사이 영화는 정치 논란에 휩싸였다. 그는 “아버지에게 바치는 헌사로 만든 영화여서 진심이 통하길 기대했는데 논란을 겪으며 한동안 패닉에 빠졌다”고 했다. 그는 “인터뷰할 때 정치 얘기는 삼가라는 조언을 받았다”고 말했지만 그의 대화는 논란에 대한 해명으로 흘러갔다.

―흥행을 이만큼 예상했나.

“예상 못했다. 손익분기점(600만 명)을 넘길 것이라는 믿음은 있었는데 개봉 첫 주 스코어가 낮아 출발이 불안했다. 그러다 정치 논쟁이 붙었다. 논란은 불편했지만 흥행 면에서만 보면 긍정적이었다고 본다.”

―이념 논쟁으로 ‘보수의 기수’가 됐다.

“나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국제시장’은 ‘12세 이상 관람가’ 가족 영화다. 아버지를 기리며 만든 영화라 어설픈 정치 메시지를 넣고 싶지도 않았다. 도식적으로 섞을 순 있지만 그건 더 비겁하다고 봤다.”

―수많은 현대사 중 흥남 철수, 파독 광부, 베트남전, 이산가족 찾기 4개를 주요 에피소드로 삼은 이유는 뭔가.

“가장 고민한 부분이다. 정치적으로 거세한 후 남은 선택지에서 특히 치열했던 배경을 정했다. 특히 1970년대 베트남전과 중동 파견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게 어려웠다. 개인의 드라마를 그리기에 베트남이 낫다고 봤다.”

―“힘든 풍파를 우리 자식이 아니라 우리가 겪은 게 참 다행”이라는 대사가 산업화 세대를 미화한다는 비판을 받으며 논란이 됐다.

“깜짝 놀랐다. 각본을 맡은 박수진 작가가 쓴 대사였는데 시나리오를 읽을 때도 전혀 문제를 못 느꼈다. 그 대사는 특정 세대의 상징이 아니라 그저 부모의 마음을 대변하는 거다. 나만 해도 두 아들이 없다면 이렇게 열심히 일 안 한다. 진보든 보수든 부모라면 자식에게 더 나은 세상을 물려주고 싶은 마음이 있을 거다. 부모 마음은 이념이나 세대를 초월해 똑같다.”

―박근혜 대통령이 애국심의 사례로 든 국기 경례 장면은 웃기려는 의도 아니었나.

“한 장면을 두고 관객의 반은 웃고 반은 탄식한다. 풍자로 해석하거나, ‘그땐 정말 그랬다’며 공감하거나, 애국을 생각할 수도 있다. 그건 관객 몫이다.”

―비판이 서운하진 않았나.

“영화는 김춘수 시인의 ‘꽃’과 같다. 이름을 불러주면 받아들여야지(웃음). 다들 남진(정윤호)의 카메오 부분을 재미용으로만 본다. 그런데 거기엔 전라도 사람 남진이 경상도 사람 덕수의 목숨을 구한다는 함의도 있다. 영화 속 동남아 노동자 에피소드는 50년 전 독일로 떠나야 했던 우리 역사를 통해 역지사지하길 바라며 넣었던 거다. 내 나름의 소통과 화합을 말한 건데 그건 내 진심이다.”

영화 주인공 덕수(황정민)와 영자(김윤진)는 윤 감독의 부모 이름에서 따왔다. 윤 감독에게 ‘국제시장’은 “10년 동안의 숙원 사업”이었다. 아버지 영화를 만들겠다는 생각을 처음 한 건 2004년. 세 번째 영화 ‘낭만자객’ 실패 후 슬럼프를 겪을 당시, 첫아들이 태어나며 그는 아버지가 됐다.

―다음 영화가 4년 후 나왔으니 공백이 컸다.

“사회생활에서 첫 실패를 겪을 때 가장 사랑하는 존재(아들)를 얻었다. 대학 2학년 때 돌아가신 아버지를 처음으로 절실히 이해했다. 아버지가 퇴직 후 주식 투자 실패로 가세가 기울었다. 돌아가실 때 유언이 ‘미안하다’였다. 임종 때는 그 의미를 잘 몰랐는데 돌이켜볼수록 너무 마음이 아팠다. 그때 ‘아버지 그래도 고맙습니다’라는 말을 못한 게 응어리가 됐다. 언젠가는 아버지 얘기를 해야 했고, 그만한 투자를 받을 수 있는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재기의 동력이 됐다.”

―영화에서 가장 아끼는 장면은 뭔가.

“마지막 장면이다. 덕수의 독백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대사는 내가 썼다. 내가 아버지에게 전하고 싶었던 말이기도 했다.”

윤 감독의 이력은 특이하다. 고려대 경제학과 출신인 그는 영화계 입문 전까지 5년간 광고회사(LG애드)에서 근무했다. 감독 데뷔작 ‘두사부일체’(2001년)를 포함해 총 여섯 편의 영화를 내놓으며 충무로의 대표 흥행 감독이 됐다. 2002년 제작사 JK필름을 차려 10여 편의 영화 제작에도 참여했다. ‘윤제균표’ 영화는 대중적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평단의 평가는 좋지 않다.

―대중의 취향을 잘 아는 것 같다. 흥행 공식이란 게 있나.

“없다. 그렇게 머리로 찍은 영화가 ‘낭만자객’인데 망했다. 흥행 비결을 꼽는다면 공감 능력이다. 이른바 ‘윤제균표’ 영화라는 게 좋게 말하면 재미있고 감동적이고, 안 좋게 말하면 전형적이고 신파적인데 거기에 다수가 공감할 요소가 있는 것 같다.”

―악인이 없고, 역경을 극복하는 스토리가 많은 것도 특징이다.

“캐릭터가 단조롭고 꿈과 희망을 강요한다고 욕도 많이 먹지만 내가 원래 굉장히 긍정적이다. 세상엔 ‘because of(때문에)’형 인간과 ‘in spite of(그럼에도 불구하고)’형 인간이 있다고 한다. 난 후자다.”

―영화판에 오기 전 광고회사를 다녔다.

“외환위기로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한 달간 무급휴직을 했는데 그때 쓴 시나리오가 당선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광고회사에서는 주로 예산과 결산 업무를 했다. 예전엔 영화에 늦게 입문한 게 아쉬웠는데 이젠 그 경험이 영화감독으로서, 제작자로서 많은 도움이 된다. ‘자존심을 버리면 인생이 즐겁다’는 걸 그때 배웠다. 신인 감독들은 더러 배우나 스태프와 갈등을 겪는데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갈등이 생기면 도와달라며 무릎 꿇고 운다(웃음). 나처럼 ‘비굴한 감독’은 처음 봤다고들 한다. 그러면 어떤가. 영화만 잘되면 된다.”

―윤제균 사단이라는 말이 있을 만큼 특정 배우와 자주 작업을 한다. 특히 여배우 중에는 하지원, 김윤진, 엄정화 등이 꼽힌다. 셋 다 다소 ‘세 보이는’ 여성이다.

“정이 많아서인지 좋은 사람들과 한 번 하면 계속 하게 된다. 내가 강한 이미지의 여성을 선호하는 건 맞는 거 같다. 보통 남자 감독들이 영화를 찍을 때 남주인공에는 자신의 모습을, 여주인공의 모습에는 이상형의 모습을 투영한다고들 한다. 생각해보니 내 와이프도 센 편이다.(웃음)”

―본인만의 영화 작법이 있나.

“한 장면에 집중한다. 처음 기획할 때 한 장면을 생각하고, 나머지는 그 장면을 극대화하기 위해 달려간다. ‘국제시장’은 마지막을 위해 앞의 드라마가 필요했던 것이고, ‘해운대’에선 세 커플의 생사가 갈리는 장면을 위해 쓰나미가 상영 한 시간이나 지나서 몰려온 거다.”

―‘국제시장’에서는 ‘윤제균표’ 영화라는 말을 벗어나고 싶다고 했는데….

“‘웰메이드’로 만들고 싶었다. 더 웃길 수 있었지만 코미디를 줄였다. 신파라는 소리 안 듣게 하려고 배우들에게 ‘오버하지 말자’고 했다. 실제로 영화를 본 외국 프로그래머들은 울지 않았다. 유독 한국인들만 보고 우는 거 보면, 우리 특유의 한이 있는 거 같다.”

―‘국제시장’ 후속편도 만들 건가.

“해보고 싶은 생각은 있지만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배우나 투자자도 다 허락해야 하기에 쉽진 않다. 덕수 가족이 1980, 90년대를 어떻게 헤쳐 현재에 왔을지 궁금하긴 하다.”

―목표는…. 혹시 예술 영화를 찍을 생각은 없나.

“나중에, 더 나이가 들면. 내 꿈이 임권택 감독님처럼 되는 거다. 한국은 감독의 수명이 짧은데, 그렇게 오랫동안 영화를 찍을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것 같다. 최고령 감독이라는 얘길 듣는 게 목표다.”

구가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