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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각자의 책임의식 일깨운 '땅콩 回航'

바람아님 2015. 1. 15. 10:23

(출처-조선일보 2015.01.15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사진

'땅콩 회항' 사건 최대 피해자는 땅콩이란 우스갯소릴 들었다. 

이름부터 이국적 향취를 풍기는 마카데미안 너츠가 우리네 단골 주전부리인 땅콩을 대신해 

불티나게 팔린다는 소식만큼이나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는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분노한 여론의 화살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안하무인(眼下無人) 행태와 대한항공의 

시대착오적 축소 은폐 관행에 집중되면서 정작 당시 회항을 감행했던 기장(機長)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그 궁금증이 얼마 전 검찰 발표로 다소간 해소되었다. 

당시 탑승 게이트를 떠나 활주로 쪽으로 이동 중이었던 기장은 

"기내 응급 상황이 발생해 탑승구로 돌아가야 한다"는 사무장의 보고를 받곤 3분간 멈춰 섰다가 

다시 되돌아가는 상황이 공항 CCTV를 통해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정황에 대해서는 기장과 사무장의 증언이 엇갈려 진실 공방이 이어지는 가운데 

검찰은 사무장의 주장에 보다 무게를 두면서 

'부사장의 위계에 눌려 지시를 따른' 기장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순 없다는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러고 보니 사건의 본질상 동일 잣대로 비교하기엔 무리가 있지만 

세월호 선장과 대한항공 기장 사이엔 묘한 공통점이 발견된다. 

세월호 선장이 절체절명의 순간에도 승객의 생명과 안전은 뒤로한 채 청해진 해운 측 임원과 통화를 시도하며 

윗선의 지시를 기다렸듯이 대한항공 기장도 250명 승객의 생명과 안전 대신 조 부사장의 의중을 우선시했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정황이 드러나고 있지 않은가. 

침몰하는 배와 476명의 승객을 버려둔 채 신분을 숨겨가며 가장 먼저 탈출을 감행했던 선장의 철면피한 행동이나 

예측 불허의 위험과 250여명 승객의 불안은 외면한 채 회장님 따님으로 대변되는 조직의 위계를 최우선 순위에 두었던 

기장의 신주의(保身主義) 공히 한국 사회를 향해 켜진 경고등 아닐는지.

국제적 망신과 조롱의 대상이 됐던 회항 사태를 한국 사회 특유의 권위주의적 조직 문화 및 소통 방식 탓으로만 돌리기엔 

왠지 개운치가 않다. 오너가 기장의 목줄을 쥐고 있다 해도 

그 상황에서 회항을 결정하는 최종 책임은 기장에게 있음을 간과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기장을 향해 법률적 책임을 물을 수는 없다 해도 도덕적 책임과 그의 태도에 대한 윤리적 책무는 충분히 물어야 마땅할 것이다.

자신이 있는 자리에서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과 의무를 다하는 자세야말로 기본 중 기본일 텐데 

'부사장의 하기(下機) 지시를 몰랐을 리 없는 상황'에서 오너의 심기를 건드려 좋을 것이 없다는 안일한 태도에 더하여, 

'별일 있으랴'는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이 합세한 이 사태를 묵과해선 안 될 것이다. 

항공 수칙을 제대로 지키지 않음으로써 전대미문의 사태를 야기한 책임을 엄중히 물어야 한다면 

그의 모습과 그의 목소리가 감춰진 상황이야말로 무책임을 미덕으로 포장하는 위기의 징표임을 기억할 일이다.

결국 국가적 차원의 이슈에서 가족적 일상의 소소함에 이르기까지 

조직의 대소와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모두 자신에게 부여된 책임의 엄혹함을 뼈저리게 인식하지 못한다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못 막는 우(愚)를 또 반복하지 않을까 염려가 앞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