時事論壇/經濟(內,外)

[데스크에서] '세계 경제영토 73%'의 虛像(허상)

바람아님 2015. 1. 26. 09:48

(출처-조선일보 2015.01.26 최우석 산업1부 차장)


	최우석 산업1부 차장 사진
올해 다보스 포럼 취재 내내 '대한민국은 큰일 났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자유무역협정(FTA) 

강국인 한국이 세계 무역 체제에서 자칫 낙동강 오리 알 신세가 될 운명에 처했기 때문이다.

세계 40여개국 정상과 300여명의 장관, 1500여명의 기업인이 나흘간 머리를 맞댄 다보스 포럼에서 

그동안 우리 정부가 목숨 걸고 추진해오던 양자(兩者) 간 FTA는 아무런 관심을 받지 못했다. 

대세는 다자(多者) 간 FTA였다. 

대표적인 게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Trans-Pacific Partnership)이다. 

우리 정부는 그동안 TPP에 가입하지 않아도 별 지장이 없다는 입장이었다. 

세계 경제영토의 73%를 확보했기 때문에 수출 시장도 얼마든지 열려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보스 현장에서는 우리 정부 시각과 완전히 다른 이야기가 들렸다. 

TPP가 발효되면 한국에는 치명적이라는 것이다. 

'누적 원산지 규정' 때문이다. 제품 생산에 사용되는 부품·소재는 TPP 12개국에서 생산된 물품만 국산(역내산·域內産)으로 

인정받게 된다. 이 때문에 TPP 참여국들은 누적 원산지 규정을 활용하기 위해 한국산 부품·소재 대신 일본 등 

TPP 회원국 제품을 활용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문제는 자동차·섬유·전자·철강 등 일본과 겹치는 우리의 주력 상품 대부분이 이 같은 위기에 봉착하게 된다는 점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은 뒤늦게라도 TPP에 가입하든지 

아니면 이들 12개국에 공장을 지어 누적 원산지 규정을 우회하는 것뿐이다. 

전자는 일본이 시큰둥해서 쉽지 않고, 후자는 국내 공장의 해외 이전과 이로 인한 국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영토의 73%를 확보했기 때문에 양자 간 수출에 지장이 없다는 건 맞는 말이다. 

하지만 12개국이 하나로 통합돼 거대한 시장을 형성하고 이들 나라 기업들이 TPP 시장에 주력하게 되면 

우리는 설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또 국내 일각에선 TPP 12개국이 복잡한 누적 원산지 규정에 합의할 리 없다면서 

굳이 TPP에 가입하지 않아도 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는 현실을 모르는 소리다. 

다보스에서 만난 미국의 유명 정책 컨설팅 업체 맥라티의 넬슨 커닝햄 대표는 "TPP는 무조건 발효된다"며 

"한국이 뒤늦게 참여하는 것도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미국과 유럽이 사상 최대 규모의 FTA가 될 범대서양무역투자동반자협정

(TTIP·Transatlantic Trade and Investment Partnership)을 추진하면서 캐나다와 일본 등을 포함시키려 한다는 점이다. 

여기에도 누적 원산지 규정이 적용될 게 뻔하다. 

TPP에서 외면받고 TTIP에도 끼지 못한다면 무역으로 먹고사는 한국은 수출할 경제 영토를 더 잃게 될 것이다.

'세계 경제영토의 73%'가 일장춘몽(一場春夢)으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라도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