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일보 2015-1-27 일자]
이상렬/뉴욕 특파원
요즘 각국 정부엔 성적표가 날아들고 있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6년여간 각국이 펼쳤던 위기 극복 노력에 대한 통지표다. 학창시절 성적표를 받아본 사람은 안다. 공부와 성적의 관계가 얼마나 정직한지. 책을 밀쳐놓고 노는데 바빴는데 성적이 좋은 경우는 없다.
가장 신이 난 나라는 미국이다. 현상만 놓고 보면 미국의 성적은 단연 A다. 각종 경제 지표는 전성기를 방불케 한다. “미국 경제가 15년 만에 다시 글로벌 경제의 운전석에 앉았다”는 표현(블룸버그 통신)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유럽과 일본의 성적은 잘 줘도 C나 D 아닐까. 천문학적인 돈을 쏟아 붓고도 경제가 디플레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으니 그 이상의 평가를 받기는 어려워 보인다.
중국은 굴곡이 있었다. 세계 경제가 대공황 이후 최악의 침체로 빠져들었을 때 거의 혼자서 구원투수 역할을 했다. 세간엔 개도국들이 미국 자본주의 골격인 ‘워싱턴 컨센서스’ 대신 중국식 발전모델인 ‘베이징 컨센서스’를 따라야 한다는 얘기가 풍미했다. 하지만 최근 성장률 하향세가 뚜렷해지면서 중국도 A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 됐다. 월가에서 ‘베이징 컨센서스’ 얘기는 쑥 들어갔다. 중국과 함께 브릭스(BRICs)를 구성했던 러시아와 브라질도 말이 아니다. 러시아는 마이너스 성장이 기정사실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BRICs에서 브라질과 러시아를 빼고 ICs로 불러야 한다는 얘기가 브릭스란 조어를 처음 만든 짐 오닐 전 골드먼삭스자산운용 회장에게서 나왔다.
지난 6년, 세계 각국엔 공평하게 같은 시간이 주어졌다. 그러나 시간을 쓰는 방식은 달랐다. 많은 나라가 경제회생을 단호하고 일관되게 밀어붙이지 못했다. 유럽과 일본은 경기 부양책을 미적미적 했다. 중국은 구조개혁이 미진했고, 러시아와 브라질은 자원의존형 경제 체질을 바꾸지 못했다.
위기 국면일수록 리더십이 중요한 법이다. 노벨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칼럼에서 “다른 당이 백악관을 차지했다면 처했을 상황보다 미국인들은 더 잘 살고 있다”는 말로 오바마 대통령을 상찬했다. 오바마가 과감한 재정지출로 경기가 더 나빠지는 것을 막았고, 보수주의자들의 공세로부터 연방준비제도를 보호해 금리 인상을 억제하는 데 도움을 줬다는 것이다. 보다 인상적인 것은 솔직하고 투명한 정책 추진 방식이다. 오바마의 올해 국정연설은 단적인 사례다. 그는 “상위 1%의 세금 구멍을 막아 그 돈을 자녀 보육과 대학 교육에 쓰자”고 제안했다. 야당인 공화당이 상·하원을 장악한 현실에서 실현가능성은 높지 않다. 그러나 대통령의 공개적인 부자 증세 주장은 정부의 지향점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국민들은 선거에서 찬반과 호불호를 드러낼 것이다. 그렇게 탄생된 정책은 명분과 돌파력을 갖추게 된다.
지난 6년간 한국 경제의 성적표는 어떨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정책의 솔직함과 투명성, 그것을 바탕으로 반대편을 설득하는 리더십이 부족했다는 점이다.
이상렬 뉴욕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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